자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관련 통계를 비판한 러시아의 여의사가 경찰에 체포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3일(현지시간) 러시아 수사당국이 아나스타샤 바실예바 러시아의사동맹 의장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동료의 증언에 따르면, 러시아 내 독립 의료노조를 이끄는 바실예바 의장은 2일 오후 낙후된 한 도시의 병원에 마스크 등 의료용품을 전달해주는 과정에서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바실예바 의장의 체포 소식에 러시아 내 반(反)푸틴 여론에 불을 붙였다. 러시아 당국은 그간 지속적으로 코로나19 관련 수치를 왜곡하고 숨긴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감염자와 사망자 통계가 지나치게 낮아 의도적으로 사태를 축소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러시아의 낙후된 의료체계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재난 대처 능력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제2의 도시인 성 피터스버그의 한 병원 관계자는 지난 3일 “의료용품이 부족하다”고 호소하는 내용의 비디오를 게시했다. 이에 대해 마리아 바클디나 병원장이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를 갖고 “그런 일은 없다”고 부인하며 갈등을 빚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코로나19가 실제로 어느 정도로 퍼졌는지는 베일에 싸여있다. 정부를 비롯한 친(親)푸틴 진영은 상황이 심각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야권 인사들은 연일 정부 주도의 정보조작설을 제기하고 있다.
러시아 제1야당 대표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검사를 받은 숫자가 조작됐다”며 “실제로는 통계에 잡힌 것보다 훨씬 많은 감염자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57만5000여건의 검사가 진행됐다고 하지만, 이는 한 사람에 대한 복수 검사를 모두 포함하는 등 부정확한 수치라는 지적이다.
NYT는 감염자 수가 급증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러시아의 낙후된 의료체계가 붕괴할 수 있어 이를 우려한 푸틴이 사태를 축소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푸틴이 2036년까지 장기집권하는 법안을 밀어붙인 지 한 달도 안 됐다는 점 또한 정권 입장에서는 부담 요소다. 이미 침체 상태에 들어간 러시아 경제 문제와 맞물린다면 푸틴에게 초대형 악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푸틴의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 내 푸틴 지지율은 지난 2월 69%에서 3월 63%로 하락했다. 이는 우크라이나와의 분쟁으로 푸틴의 인기가 치솟기 이전인 2014년 당시의 지지율에 근접한 수치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