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긴수염 고래 게임’을 아시는지. 2013년 러시아에서 시작돼 비극을 몰고 온 게임으로, 이 가상의 게임 그룹에 가입한 청소년들은 하루에 하나씩 총 50개의 과제를 수행해야 했다. 게임 관리자는 ‘온종일 공포 영화 보기’ 같은 간단한 미션으로 시작해 그 강도를 계속 올리면서 이들이 ‘자살’에 이르도록 협박했다. 당시 이 게임으로 130여명의 청소년 자살 피해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영화 ‘서치 아웃’은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SNS 범죄 스릴러다. 취업준비생 준혁(김성철)과 경찰 지망생 성민(이시언)이 지내는 고시원에서 한 학생이 자살하고, 이들은 이 범죄의 이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 계속되는 자살의 배후에는 ‘저승의 여왕’이라는 뜻의 ID ‘에레쉬키갈’이 있다. 범인은 지난한 삶에 지친 학생들에게 “당신의 삶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말로 다가가 삶이 허무의 연속일 뿐이라고 종용한다. 종말론적 세계관을 앞세워 시민들을 꾀는 사이비 종교가 얼핏 연상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스릴러 특유의 쫄깃함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서사 초반부터 뿌려놓은 ‘떡밥’들이 차례차례 회수되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데도 그렇다. 편집점이 길어 속도감이 적어서다. 무엇보다 SNS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를 살펴보는 극인 만큼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지는데, 그걸 표현하는 인물이 전형적으로 보인다는 게 아쉽다. 성민 등 주인공들에 대한 전사가 부족한 탓에 이들의 정의로움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눈길을 단단히 붙잡는 이유는 최근 사회를 커다란 충격에 빠뜨린 ‘n번방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면이 있어서다. 관객은 최근 뉴스를 장식했던 헤드라인들을 새삼 회고하게 된다. 얼굴을 감춘 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급급한 에레쉬키갈과 그를 좇는 수많은 추종자, 이 시스템에서 탈출하려고 하는 이들의 신상정보를 알아내고 협박을 해 족쇄를 채우는 방식까지. 영화는 현실을 예견한 양 n번방의 추악한 시스템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사이로 의미심장한 메시지도 녹아든다. 등장인물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모르나 대충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한다. 그런 신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캐릭터가 흥신소에서 일하는 해커 누리(허가윤)다. 준혁 성민과 팀을 이뤄 에레쉬키갈의 정체를 파고들던 누리는 범인 쫓는 일을 그만두라고 말하는 준혁에게 이렇게 말한다. “(피해자들을) 안 봤으면 모를까, 이미 봤는데 어떻게 그래.”. 텔레그램에서 n번방의 존재를 확인하고 끈덕지게 이 문제를 파고들었던 ‘취재단 불꽃’과 이 문제에 공분하며 문제 해결에 힘을 모으는 시민들이 떠오르는 대사다.
SNS로 인한 현대 사회의 병폐 외에도 극은 선악의 모호함, 진실과 정의의 부재, 취업난 등 다양한 주제의식을 담아낸다. 너무 많아 버거울 정도다. 그럼에도 몸 하나 겨우 뉘일 수 있는 고시원에서 우울과 좌절에 빠져 범죄자의 꼬임에 현혹되고야 마는 청년 군상에 대한 스케치는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SNS상의 범죄를 포함한 대부분의 범죄는 이처럼 소외된 이들을 향하기 마련이다.
극을 근저에서 튼튼히 받치는 건 배우들이다. 이시언과 허가윤은 배역을 깔끔히 소화한다. 특히 김성철이 돋보이는데, 선악을 고민하는 준혁의 다면적인 모습을 완숙하게 표현해낸다.
서치 아웃은 곽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 그는 “사회적 외로움과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에 대해 다시금 깊게 생각하며 SNS의 이면을 낱낱이 파헤치고자 했다”고 전했다. 시의성을 듬뿍 묻힌 극은 공교롭게도 SNS의 이면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추악한 민낯도 함께 고심케 하는 영화가 됐다. 92분, 15세 이상 관람가.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