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무용수들이 주방에서 춤을? 해외 발레계는 재능기부 중

입력 2020-04-05 13:50 수정 2020-04-05 14:04
미국 뉴욕시티발레단 수석무용수 타일러 펙(왼쪽)과 영국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타마라 로호가 집안에서 무료 온라인 발레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다. 펙 인스타그램-영국 국립발레단 유튜브 캡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 공연장이 문을 닫은 이후 해외 발레계에서는 재능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팔로워 20만명에 달하는 뉴욕시티발레단 수석무용수 타일러 펙은 지난달 15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스트레칭 영상을 처음 올렸다. 코로나19가 심각한 뉴욕에서 펙 역시 집에 머물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다. 펙은 “집 안에만 머물러야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발레 클래스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뉴욕시티발레단 수석무용수 타일러 펙 SNS 캡처

펙의 클래스는 평일 오후 1시(현지시간)에 열린다. 어느 날에는 주방에서, 또 어느 날에는 책상 의자 앞에서 진행된다. 그는 “싱크대가 허리 아래라면 식탁 의자를 활용하는 게 좋다”며 꼼꼼하게 조언하기도 한다. 특별한 기구나 테크닉 없이도 따라할 수 있는 펙의 온라인 무료 클래스는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오후 1시에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영상은 계속 공개된다.

펙에 이어 지난달 21일 영국 로열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으로 현재 영국 국립발레단(ENB) 예술감독인 타마라 로호도 무료 온라인 발레 클래스를 시작했다. ENB의 유튜브 등에 공개된 영상에서 로호는 레깅스를 활용한 스트레칭을 알려주거나 좁은 공간에서 연습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영국 로열발레스쿨 교사인 사라 드 푸 역시 온라인 강습에 적극적이다. 전문 교사답게 그는 유아용, 성인용, 전문가용, 노인용 등으로 단계를 세분화 했다. 지난 1주일간 올린 영상만 무려 14개다.

뉴욕시티발레단에서 펙 외에 수석무용수 메건 페어차일드 등이 동참했으며, ENB 역시 로호를 필두로 소속 무용수들의 참여가 잇따르고 있다. 휴스턴 발레단 등 적지 않은 발레단들도 아예 발레단 차원에서 동참하고 있다.

한편 극장이 문을 닫은 이후 세계 각국 발레단은 관객을 위해 무료 온라인 공연을 시작했다. 21세기 들어 공연실황을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등 예술의 유통 플랫폼이 다양화 됐지만 발레는 다른 장르에 비해 보수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영화관마저 갈 수 없는 관객을 위해 유튜브나 페이스북을 통해 공연을 보여주고 있다.

마스크난에 시달리는 미국에서 지역 사회를 위해 마스크 제작에 나선 털사 발레단 의상팀. 털사 발레단 홈페이지

그런데, 온라인 발레 클래스와 영상 중계 외에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선 발레단도 있다. 마스크 대란이 벌어진 미국에서 몇몇 발레단의 의상팀은 마스크 제작에 직접 나섰다. 시작은 털사 발레단 의상책임자인 숀 스터드반트의 아이디어였다. 스터드반트는 발레단 동료들과 함께 의료용으로도 사용 가능한 수준의 마스크를 1주일에 300개씩 만들어 인근 경찰서와 병원 등에 전달하고 있다. 털사 발레단에 자극받은 밀워키·마이애미 발레단도 뒤를 이었다. 스터드반트는 미국 발레잡지 ‘포인트’와의 인터뷰에서 “발레단에 사랑을 보내준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물론 예외는 있기 마련이다. 지난달 31일 독일 뮌헨의 바이에른 주립발레단은 당국의 극장 폐쇄 조치에도 몇 주간 몰래 연습하다가 경찰 단속에 걸렸다. 예술감독인 이고르 젤렌스키는 “자발적 연습”이라고 해명했지만 현지 언론은 무용수들의 근태가 기록된다는 점에서 강제적이라고 전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수적이지만 젤렌스키는 연습을 쉴 경우 무용수들의 기량 하락을 우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한국의 국립발레단은 몇몇 단원들이 자체 자가격리 기간 해외여행을 가거나 사설학원 강습을 나간 것이 밝혀져 지탄을 받았다. 나아가 일부 단원들이 그동안 수익 사업을 해온 것도 알려져 직업윤리 논란을 일으켰다.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립발레단도 속죄의 의미로 발레의 가치를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활동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