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해군이 경질한) 크로지어 함장은 영웅입니다. 증조할아버지도 동의하실 겁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증손자가 브렛 크로지어 전 루스벨트호 함장을 공개적으로 두둔하고 나섰다. 크로지어 함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한 항공모함 루스벨트호에서 병사들이 긴급 하선해야 한다는 SOS를 쳤다가 경질됐다.
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는 ‘크로지어 함장은 영웅’이라는 기고문이 실렸다.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증손자이자 롱아일랜드대학 시어도어 루스벨트 연구소장인 트위드 루스벨트가 쓴 글이다.
그는 “해군은 크로지어 함장을 경질하면서 그의 편지가 승조원들 사이에 극심한 공포를 야기할 수 있는 중대한 실수라고 지적했지만, 당시 항모 안의 끔찍한 상황을 볼 때 그가 다른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고 평가했다.
이어 “크로지어 함장은 부하들을 구하려면 즉시 행동해야 한다고 느끼고 강력한 편지를 쓰기로 결정했을 것”이라며 “그의 경력 면에서 최고 접근법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결과를 얻어냈다”고 강조했다.
크로지어 함장은 항모 안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속출하자 지난달 30일 국방부에 긴급 서한을 보내 승조원들의 안전을 위한 하선을 요청했다. ‘전쟁 중도 아닌데 승조원들이 죽을 판’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의 편지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었고, 해군은 승조원들을 하선시키기 시작한 다음 날인 지난 2일 크로지어 함장을 전격 경질했다. 판단력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루스벨트 소장은 120여년 전 증조부가 했던 행동을 거론하며 크로지어 함장을 두둔했다. 그는 “크로지어 함장이 지휘하던 항모 이름을 가진 분의 후손으로서 이런 상황에서 증조할아버지는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이 경우 어떻게 하셨을지 정확히 안다. 1898년 거의 똑같은 상황에 부닥치신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증조부께서 쿠바를 둘러싼 미국-스페인 전쟁 당시 ‘러프 라이더스’(Rough Riders)라는 자원 기병대를 지휘하신 적이 있다. 산후안 전투에서 승리하고 전쟁은 사실상 끝났지만, 쿠바에 여전히 남아있던 병사들은 황열병과 말라리아라는 더 나쁜 적을 맞닥뜨리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적들보다 질병으로 훨씬 더 많은 병사가 숨졌는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을 포함해 전장의 사령관들은 병사들을 고국으로 데려 오고 싶어 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 지도부, 특히 러셀 앨저 당시 육군 장관이 정치적 반발을 우려해 이를 거절했다. 직업 군인 장교들도 의견을 냈다가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루스벨트 소장은 “단기 자원자여서 잃을 것이 없는 증조부께서 동료 사령관들의 암묵적 동의를 얻어 언론에 강렬한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 편지로 병사들을 당장 데려와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앨저 장관이 포기하고, 부대를 뉴욕주 롱아일랜드 끝 ‘몬탁’에 격리시켰다”며 “당시 쿠바에서 수백명이 죽었는데 증조부의 행동이 무수한 사람들을 구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증조부도 대가를 치러야 했다. 화가 난 앨저 장관이 증조부께서 명예훈장 후보에 오르자 이를 받지 못하도록 막았다”며 “증조부는 사후인 2001년 명예훈장을 받았고, 결국 그가 승리했다. 오늘날 누가 앨저 장관을 기억하는가”라고 했다.
또한 “많은 이들이 명예보다 사리 추구를 우선시하는 시대에 이렇게나 많은 이들이 심지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큰 용기를 보여준다는 사실이 희망적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그 시대에 명예로운 길을 택했고, 크로지어 함장도 같은 길을 걸었다”고 추켜세웠다.
루스벨트호에 탑승한 승조원 5000명 가운데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지난 4일 기준 155명으로 전날보다 13%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전체 인원의 54%가 검사를 받았고, 1548명은 하선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