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축구계 최고 임금 수준을 자랑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구단과 선수들의 임금 삭감 협상이 난관에 봉착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수입 감소를 이유로 구단들이 선수들 임금 30% 삭감안을 제시했지만 선수들은 임금 삭감으로 인한 이득이 구단 소유주들에게만 집중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영국 프로축구선수협회(PFA)는 4일(현지시간) 회의 끝에 EPL 20개 구단 주장들의 이름을 내건 성명서를 발표했다. 전날 각 구단 경영진이 모여 조건부 감액과 지급 연기 등을 통해 선수들의 연간 보수 중 30%를 깎는다는 안을 만장일치 제안한 데 따른 응답 성격이다. PFA 논의에는 축구리그지도자협회(LMA)도 참여했다.
PFA는 이 성명에서 선수들의 연봉을 제안대로 30% 깎는 조건으로 구단들에게 2000만 파운드(약 303억원) 이상을 자선 용도로 내놓고 2부리그 이하 구단들을 위해 1억2500만 파운드(약 1895억원)를 지원할 것을 요구했다. 사실상의 거부 선언이다. 또한 소속 구단 직원들의 임금을 100% 보장하고 2부리그 이하 구단 직원과 선수들, 영국 공공보건당국 직원들을 지원할 것이라고도 약속했다.
실제 분위기는 드러난 것보다 험악하다. 스포츠전문매체 디애슬레틱은 회의 관계자를 인용해 “PFA가 (구단들에게) 사실상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싸우겠다고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해석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EPL 28년 역사상 선수들과 구단 경영진 사이 긴장감이 가장 극에 달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선수들은 구단들의 대처가 자신들을 여론 비난의 희생양 삼으려는 것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PFA는 성명에서 “구단들이 제안한 연봉 30% 삭감안은 곧 임금에서 50억 파운드(약 7조5800억원)을 깎는 걸 의미하며 이는 정부에 납부할 세금도 20억 파운드(약 3조300억원) 줄어드는 걸 뜻한다”며 “이러한 정부의 (세금) 손실이 보건당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건가. 선수들에게 제안을 할 때 이런 사항이 고려됐는가”하고 질타했다.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한 EPL 대표 구단에서는 선수단이 구단 경영진에 임금삭감안은 수용할 수 없으며 지급 연기안만 고려하겠다고 통보했다. 이들은 구단 직원들 모두의 임금을 전액 보장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 선수단은 영 공공보건당국에 기부를 하는 안도 선수단 내부에서 별개로 논의하고 있다. 앞서 리버풀 FC 주장 조단 핸더슨은 EPL 선수들이 PFA을 통해 영 보건당국에 공동기부를 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선수들은 자신들의 임금 삭감으로 구단 소유주들이 이득을 보는 걸 원하지 않고 있다. 선수단 대표 중 일부는 임금을 삭감한다면 구단이 선수단에 강제하는 언론 홍보나 광고 등 의무 역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디애슬레틱에 따르면 한 EPL 구단은 이미 소속 선수들에게 경기가 없는 동안 홍보 콘텐츠에 출연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이와 별개로 리버풀 구단이 같은 날 직원 200여명을 일시 해고한 일도 타 구단들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필이면 해당 발표가 선수들에게 임금 삭감의 정당성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 나왔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주 토트넘 홋스퍼와 뉴캐슬 유나이티드가 구단 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해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때문에 EPL 구단 전체가 아닌 각 구단 개별로 선수단과 협상하는 안도 거론되고 있다.
스포팅인텔리전스가 실시한 지난해 ‘글로벌 스포츠 임금 조사(GSSS)’에 따르면 EPL은 선수 연봉이 총 19억6742만3750달러(약 2조4020억원)로 세계 프로축구리그 중 1위였다. 전 세계 프로스포츠리그에서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 이어 평균 4위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