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빈이 ‘또 너지?’ 이러는데 제가 정신이 없더라고요.”
성착취물 구매자, 광고의뢰자, 코인대행업체 관계자 그리고 피해자. 디지털장의사 박형진 이지컴즈 대표는 지난해 12월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에게 네 가지의 ‘가짜 신분’을 들이밀었다.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악랄했던 범행수법만큼이나 그는 조심스러웠고, 교활했다.
박사를 뒤쫓게 된 건 고등학생이던 ‘박사방’ 피해자 2명의 부탁을 받고 시작한 일이었다. IP 추적으로 가해자를 특정하기 위해 정체를 감춘 뒤 ‘박사’를 만났고 경찰과 공조했다. 결국 잡았다. 조주빈이 체포되고 나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이번엔 지난 6년 한번도 본 적 없던 의뢰인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소위 관전자로 불리는 가해자들이다. “텔레그램 접속기록을 삭제해달라”는 의뢰가 쏟아져 들어왔다.
박 대표는 지난달 31일 서울 송파구 이지컴즈 사무실에서 국민일보를 만나 “그놈들은 제2의 텔레그램을 찾고 있다. 피해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사건 속 남은 과제들을 짚었다.
“조주빈의 전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박 대표는 사건의 시작점을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대한 다양한 방법으로 접촉을 시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진과 영상을 구매하고 싶다”며 접근했다. 그랬더니 “입금해라. 10초 준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자지갑 주소를 보낸 뒤 10, 9, 8, 7… 숫자를 세며 다그쳤다. “초보라서 그렇다, 기다려달라”며 시간을 벌려하자 인신공격이 쏟아졌다. 박 대표는 “욕을 엄청 하며 상대방을 정신없게 만들더라. 피해자들도 똑같이 당했을 것”이라고 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였다.
이번에는 피해자인 척했다. 이름을 말했더니 조주빈은 피해자의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공개된 사진이 아니었다. 고액 VIP 구매자만 볼 수 있는 사진인 것 같았다”고 박 대표는 설명했다. 사진은 순식간에 지워졌고 그 짧은 시간 무언의 협박이 전해졌다. 박 대표가 당황한 순간은 그 다음이었다. 조주빈이 전화를 걸어왔다. 박 대표는 “안 받으니 ‘사기꾼이네’라며 의심하기 시작했다. 통화를 하지 않으면 믿지 않았다”며 “증거가 남는데 어떻게 먼저 전화를 걸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주빈과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5분을 채 넘기기 힘들었다. 가장 길게 말을 주고받았던 건 박 대표가 광고의뢰자인 것처럼 다가갔을 때다. 월 50만원짜리 광고를 대겠다고 했더니 조주빈의 허세가 시작됐다. “내 방에는 100만원, 150만원 주고 오는 사람들 널렸다. 그냥 고객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너도 돈을 많이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부따’ ‘사마귀’ ‘이기야’라는 닉네임의 공범 3명과 피해자들의 신상정보를 빼낸 공익근무요원 등 조주빈과 이들은 ‘팀 박사’로 움직였다. 이른바 ‘고객’을 응대하고 피해자를 협박하는 과정에 이같은 제3의 인물이 한 역할은 없었을까. 박 대표는 “일베용어가 섞인 말투는 일정했다. 밤낮 새벽을 가리지 않고 답이 오더라. 교대로 움직인 것일 수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고 설명했다.
‘그놈들’은 사라진 게 아니다
지난달 16일 조주빈이 경찰에 붙잡혔다. 텔레그램 방 안을 계속 모니터링 해오고 있는 박 대표는 “절대로 끝난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텔레그램 탈퇴 계정 수만큼이나 많은 신규 가입자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이 방의 존재를 몰랐던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들어오더라”며 “경찰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방을 폭파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활동 중일 거다. ‘그놈들’의 움직임은 둔화된 게 아니다”라고 했다.
또 “조주빈이 잡히고 나서도 생겨난 방이 많다. 수사 과정이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안 된다”며 “그들은 잡히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연구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최근 텔레그램 내 또 다른 음란 대화방 운영자를 특정해 그 정보를 경찰에 넘겼다. 당시 그 안에 있던 범인들은 자신들이 머물 제2의 텔레그램을 찾던 중이었다. “당분간은 위험하니까 조금만 잠잠해지면 다시 재개하자” “위챗으로 갈까 어디로 갈까” 등의 말들이 오갔다. 박 대표는 “가해자들에게 성착취는 마약과 같아 보였다. 끊을 수 없는 것”이라며 “심지어 ‘내가 이 바닥의 대장’이라며 힘겨루기를 한다. 피해자를 울게 하는 게 그들의 놀이문화였다”고 말했다.
텔레그램 속 악독한 범죄들이 수면 위로 오른 뒤 달라진 부분도 분명 있다. 박 대표는 “몇몇 음란물 사이트 운영자가 자진해서 폐쇄 절차에 들어갔더라”며 “호언장담하던 조주빈이 잡히자 겁을 내는 거다. 검거 전날까지 오가던 성인사이트 자료 유통이 절반 넘게 멈췄다”고 했다.
“가해 흔적 못 지웁니다. 조사 받으세요”
박 대표는 지난달 27일 회사 홈페이지에 ‘이런 의뢰는 받지 않는다’는 공지를 띄웠다. ‘n번방’ ‘박사방’ 등에 접속한 기록을 삭제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텔레그램 관련 문의가 폭주하기 시작한 탓이다. 의뢰를 해온 건 가해자 쪽이었다.
박 대표는 “디지털장의사 일을 한 6년 동안 아예 보지 못했던 의뢰”라며 “조주빈이 잡히고 난 뒤 처음 연락이 오더니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가해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인 경우도 많다”고 했다. 대게는 “텔레그램 접속기록을 삭제할 수 있느냐” “다운로드 받은 거 없앨 수 있느냐”는 질문부터 시작한다. 질문은 “코인 대행업체에 돈을 보냈는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로 이어진다. 성착취물을 돈 주고 샀는데, 그 구매이력을 지워 달라는 거다.
박 대표는 쏟아지는 문의에 “만약 텔레그램 기록을 삭제해준다고 하는 곳이 있다면 모두 사기”라며 대답을 거부하고 있다. 그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부는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그랬다’ ‘정말 후회한다’고 하더라. 하지만 응대하지 않는다”며 “단호하게 ‘우리는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입금 기록은 경찰이 가지고 있으니 조사를 받으셔야 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고 했다.
“조롱과 비아냥, 제일 안타까운 건…”
오랜 시간 이번 사건을 함께 해결해오며 겪은 어려움에 대해 묻자 박 대표는 “이런 디지털 성범죄를 그동안 너무 방치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고 답했다. 그는 “텔레그램 내 자료는 삭제가 어렵다. 신고를 아무리 해도 먹히지 않았고, 텔레그램 개발사에 메일도 보내봤지만 회신은 없었다”며 “운영자 혹은 유포자가 지우지 않으면 그 누구도 지울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해당 방 운영자에게 지워달라고 협조 요청을 했는데 괜한 일을 한 거였다. 도리어 내 말을 캡처해 ‘너 디지털장의사지’라며 비아냥거리고 욕을 하더라”며 “그들이 ‘피해자 사진을 더 보내면 지워주겠다’는 말도 안되는 요구까지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영상 삭제는 물론 방이 폭파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 해냈다. 모두가 합심하면 되는 문제였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가해자들을 추적하는 동안 온갖 조롱을 받아야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조주빈과 손을 잡고 일하다가 배신한 사람’이라는 이상한 루머까지 돌았다. 그만큼 ‘그놈들’은 잡히지 않을 거라 자신했고 자신을 쫓는 자들을 웃음거리로 여겼다.
하지만 박 대표는 “그들 사이에도 빈틈이 있다. 난 그걸 이용한 것”이라며 남은 추적 단계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리고 “일단 지금은 피해자 회복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지연 기자, 김유진 인턴기자, 영상=최민석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