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증권사에도 돈 빌려주나… 이주열 총재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출 검토”

입력 2020-04-02 17:11 수정 2020-04-02 17:48

한국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회사채 등 시중 자금경색에 대응하기 위해 증권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에 돈을 빌려주는 방안을 검토한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2일 간부회의를 소집해 “코로나19의 전세계적 전개와 국제금융시장의 상황 변화에 따라 회사채 시장 등 국내 금융시장에서 신용경색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상황이 악화될 경우 회사채 시장 안정을 위해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출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법 제80조는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자금 조달에 중대한 애로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때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을 적용한 시기는 1997년 외환위기 때가 유일하다. 당시 당국은 종합금융사 업무정지와 콜시장 경색에 따른 유동성 지원을 위해 한국증권금융과 신용관리기금에 모두 3조원을 대출했다.

한은은 당초 정부 보증이 필요한 ‘한은법 68조’ 적용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다 금융통화위원 중 4명의 동의가 있으면 가능한 한은법 80조를 통한 지원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다만 법에서 정한 한국은행의 권한 범위를 벗어나거나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성 지원은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은은 이날 은행과 증권사 등을 대상으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입찰을 진행해 전체 응찰금액 5조2500억원을 모두 공급키로 했다. 만기는 91일로 금리는 기준금리(연 0.75%)보다 0.03% 포인트 높은 연 0.78%로 결정했다.

RP는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후 다시 사들이는 조건으로 파는 채권이다. 되살 때는 경과 기간만큼 이자를 얹어준다. 한은은 시중 유동성을 조절하는 수단으로 RP를 사거나 판다. 이번처럼 한은이 RP를 사들이면 매입 금액만큼 시장에 돈이 풀리는 효과가 있다.

지난달 26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시장이 필요로 하는 자금을 한도 없이 공급하는 RP 매입 제도를 오는 6월 말까지 3개월간 매주 운영하기로 했다.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쓰지 않은 수단으로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펴는 양적완화와 비슷하다.

RP 매입을 통한 무제한 유동성 공급은 정부의 100조원 규모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는 주식시장과 회사채·단기자금 시장에 48조원, 소상공인과 중소·중견기업 등에 52조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