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시중은행에서 빠져 나간 개인 신용대출액이 2조원 넘게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와 중소·대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대출도 큰 폭으로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피해가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가계와 기업이 긴급 ‘수혈’을 위해 은행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것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3월 개인 신용대출액은 총 113조1200억원이었다. 전월보다 2조2400억원 늘었다. 증가폭의 경우, 2월(1조2000억원)의 배가 넘는다.
금융업계에서는 개인신용대출 급증에 대해 부동산 대출 규제가 강화된 영향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정부의 부동산시장 옥죄기에 주택담보대출이 막히면서, 자금운용의 부족분을 신용대출로 메우는 수요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증가하면서 사업 및 생활자금 수요가 늘어난 점도 대출 증가 요인으로 보인다. 생활비 충당을 위해 ‘마이너스 대출’ 등의 이용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주식 폭락장에서 저가매수 기회를 노리는 개인들이 투자를 위해 신용 대출로 주식매수 자금을 조달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증시는 코로나19 여파로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서 급강하했다. 2000선을 넘었던 코스피지수는 외국인이 대거 이탈하면서 1430선까지 주저앉았다. 이에 ‘개미’들은 지난달에만 코스피 시장에서 11조원 넘게 주식을 사들였다. 이 때문에 ‘동학개미운동’이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가계대출은 6조6801억원 늘었다. 2015년 11월(10조1822억원) 이후 4년 4개월 만의 최대치다. 주택담보대출(4조6088억원)이 70% 가까이 차지했는데, 5년 3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주택 구매 수요가 전세 수요로 전환되고 대출 규제가 강화되기 전에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몰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침체로 생활안정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수요도 포함될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대출의 경우, 대출 증가액은 13조4568억원으로 전월(3조6702억원)의 4배에 달한다. 대기업 대출이 8조949억원으로 가장 컸다.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유동성을 확보 차원에서 대출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회사채 시장이 안 좋아지면서 기업들이 회사채 만기 연장이 안 될 경우에 대비하고 분기말 하청업체에 미지급금을 주기 위해 대기업의 한도대출이 늘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대출도 큰 폭 늘었다. 전월 대비 5조3619억원 증가했는데, 코로나19 피해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은행권에서 대출 문턱을 낮춘 영향 때문이다. 중소기업 대출 가운데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개인사업자 대출이 2조7755억원이나 증가했다. 이런 식으로 주요 5대 은행의 원화대출은 지난달에만 19조8688억원 늘었다. 2015년 9월 이후 최대 폭이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