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잡다가 히틀러 부를라… 미소짓는 세계 독재자들

입력 2020-04-02 14:59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시민생활과 정보 통제가 불가피한 상황을 틈타 전세계 권력자들이 통제력을 강화하고 있다. 헝가리에서는 행정부 명령만으로 법률을 무력화하는 코로나19 대응법이 의회를 통과해 제2의 히틀러의 등장도 가능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빅터 오르반 헝가리 총리. 지난달 30일, 오르반 행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명분으로 의회로부터 강력한 통제권을 부여받았다. 로이터연합뉴스

2일 ABC뉴스는 코로나19 대유행을 이용해 권력을 강화한 세계 권력자들의 소식을 전하면서, 대표 사례로 헝가리 빅터 오르반 총리를 지목했다.

이번 주 헝가리 의회는 투표를 통해 코로나19 대응법을 통과시켜 오르반 총리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이에 따르면 오르반 행정부는 행정 명령만으로도 기존 법안들을 무효화하거나 새로운 법안을 생성할 수 있다. 또한 총리가 판단하기에 공공안전을 위협·선동하는 정보를 유포한 자를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2008년 이후 쭉 총리직을 지킨 그는 헝가리 역사상 전무후무한 4연임에 성공했으며, 언론통제 및 측근의 군납비리 스캔들, 국회 운영축소, 반인권적 개헌 추진 등으로 유럽의 대표적인 독재자로 평가받는다.

중앙유럽대학의 비교헌법프로그램 의장인 레나타 유이츠는 헝가리의 상황을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 법과 가장 닮은 법은 악명 높은 바로 그 법”이라며 히틀러가 독일을 쥐고 흔든 1933년 전권 위임법(Enabling)을 말했다.

또한 “공식법상에 구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독재정권”이며 “총리 스스로 권력을 포기하는 것 말고는 그를 막을 방법이 없으므로, 독재자의 등장은 시간문제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AP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치켜세웠던 권력자인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도 방역 상황을 구실로 새로운 비상 권한을 부여받았다. 필리핀도 헝가리처럼 코로나19에 대한 거짓정보 유포를 범죄로 규정한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그의 지지자들은 이 법이 그저 허위정보 단속용이라고 주장한다.



질병확산을 막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격리조치가 취해지면서 시민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가디언지는 세계 인구의 약 20%인 17억 명이 일종의 격리 상태에서 살고 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정부도 비록 기한을 설정하고 권력 남용을 주기적으로 검토하기로 약속했지만 다양한 이동제한 조치에 들어갔다. 특히 영국은 자가 격리를 감시하는 과정에서 경찰력을 남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민주주의 국가로는 오직 이스라엘과 한국 두 곳이 휴대폰 데이터를 이용해 코로나바이러스 환자들을 추적했다. 중국과 이란과 같은 권위주의 정권이 취해온 조치인데, 일부 유럽 국가들도 비슷한 조치를 검토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포르투갈의 포르투 당국은 홍보용 드론을 활용,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비상조치에 협조하고 자가격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다. ABC뉴스

최근 휴대전화를 집에 두면 추적을 피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중국 당국은 소독·택배배송용 드론을 개인 감시에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실제로, 드론은 인도, 이탈리아, 포르투갈, 인도네시아와 같은 다양한 지역에서 폐쇄를 시행하는데 사용되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경찰은 안면 인식 시스템을 활용, 격리 조치된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다. 당국은 3월 초부터 이 시스템을 활용해서 500명의 자가격리 대상자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또한 시 당국은 식료품점 등을 방문할 때마다 QR코드를 찍어야 하는 통행 조치를 도입하려고 준비 중이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는 미국 ABC 뉴스에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격리 등을 비롯한) 행정조치들이 용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의 자유를 지키고 현대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세계 여러 정부들이 비상조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