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는 모두 단추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프롤로그에 “나는 여전히 한 번에 단추를 끼워 본 일이 없다”고 털어놨다. 에필로그에는 “구멍에 들어갈 찰나 손에서 미끄러지는 단추처럼 사물과 나 사이엔 늘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고 적었다. 단춧구멍에 단추를 끼우는 일상적인 일이 저자인 정영민(사진)씨에게 특별한 의미를 띠는 이유는 그가 뇌병변 장애인이어서다.
태어나자마자 황달로 장애를 안게 됐다는 그는 양손이 불편해 젓가락질을 할 수 없고 말도 어눌한 편이다. 하지만 글쓰기는 다르다. 그의 글에는 반짝이는 문장과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뭉근한 시선이 모두 담겨 있다.
‘애틋한 사물들’이라는 제목 앞에는 작은 글씨로 ‘고작이란 말을 붙이기엔 너무나’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많은 이들이 대수롭지 않게 보고 넘기는 주변의 사물 51개에 관한 이야기가 차례로 등장한다. 책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단추를 다룬 챕터는 이런 내용이다.
저자는 “어린 나는 구멍에 끼우지 못한 단추를 쥐고 한참을 울었다”고 고백하면서 “그땐 그 구멍만 제대로 통과한다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라고 말한다. 단추를 끼우고 끄르는 일을 묘사하면서 “단추와 사람은 유사점이 많다”고도 적어놓았다. “(단추와 사람은) 어딘가 꿰어지기를 열망한다. 꿰어지지 않으면 꿰어지기 위해 온몸을 불사른다. …좁은 문을 통과하려고 매번 아등바등한다.”
이처럼 ‘애틋한 사물들’에는 일상에서 길어 올린 번뜩이는 통찰이 곳곳에 담겨 있다. 모든 글이 근사하게 느껴지는 에세이집이다. 책에 담긴 몇몇 문장만 옮겨 적자면 다음과 같다.
“언젠가부터 비누만 보면 가족을 생각한다. 가족으로 묶인 사람들이 비누 같다. …가족은 감정을 나누고, 공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또 다른 무늬가 되고 힘이 되는 사람들이다.”(‘비누’)
“시소의 재미는 양쪽에 앉아서 체중에 의해 오르락내리락하는 행위다. 이때 시소 균형은 양쪽 전부가 아니라 어느 한쪽이 더 무거워야 한다. …시소 위에서 우리는 평등이 아닌 것들과 더불어 사는 방식을 배운다. ‘함께’는 ‘같음’을 지향하지 않는다.”(‘시소’)
“책장엔 여전히 못다 읽어 낸 목소리들이 꽂혀 있고 또 꽂힐 예정이다. 그럼에도 나는 낮고 불안정한 목소리를 지닌 한 권의 책으로 사람 사이 서려 한다.”(‘책장’)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