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에 있었다”는 피의자들 ‘자수 감경’ 받을수 있나

입력 2020-04-02 10:01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 수십명을 성적으로 착취한 텔레그램 ‘박사방’ 등 이른바 ‘n번방 사건’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n번방에 있었다”며 자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자수와 수사 협조를 통해 형의 감경을 노리고 경찰서를 찾는 것으로 보인다. 형법에는 자수한 피의자에 대한 감경 조항이 있다. 형법 5조 1항에는 “죄를 범한 후 수사책임 관서에 자수할 때는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실제 지난달 31일에는 3명의 박사방 유료회원이 경찰을 자기 발로 찾았다. 앞서 지난달 25일에도 전남 여수에서 “n번방 동영상을 보관하고 있다”며 한 남성이 자수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n번방 사건 가담자들은 자신의 정체가 현실 세계에 드러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미리 자수해 조금이라도 죄를 더 감경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수사 초기에 자수하는 사람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경찰 관계자는 “자수로 인한 감경 여부는 재판부가 결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예단하기 어렵다”면서도 “판결시 어느 정도 영향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태원 법무법인 에이스 변호사도 “자수행위를 한 피의자에 대해서는 검찰이 상대적으로 적은 형량을 구형하고, 재판부도 이를 감안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자수행위가 무조건 형의 감경으로 이어진다고는 할 수 없다. 자수행위를 감안하더라도 형량의 결정은 오롯이 재판부의 판단 영역에 속하는데다 이번 사건은 시민들의 비판적 여론이 굉장히 높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검사출신 변호사는 “n번방 사건과 같이 많은 사람이 대거 입건되는 경우에는 검찰이나 법원이나 모두 처리 기준을 만든다”면서 “보통 사건이라면 자수행위가 형을 줄일 수 있겠지만 재판부가 사안의 심각함을 알고 있는 만큼 다양한 요인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음란물 제작과 유포 등에 관련된 사례에서 자수감경을 인정하지 않은 판례도 있다. 지난해 10월 음란사이트 ‘소라넷’ 운영자 송모(46)씨는 1심과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 징역 4년형이 확정됐다. 송씨는 남편과 함께 2003년부터 2016년 4월까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한 ‘소라넷’을 통해 불법 음란물을 배포하고 방조한 혐의를 받고 도주하다 2018년 자진 입국해 구속됐다.

이들은 재판에서 “자수를 위해 스스로 입국했기 때문에 감경사유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자수가 인정되는 경우 법원이 임의로 형을 감경 및 면제할 수 있을 뿐이라 자수감경을 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