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월세대란’ 조짐…“뉴욕시민 40% 집세 못낼 것”

입력 2020-04-01 18:1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현지시간) 백악관 코로나19 대응 TF 브리핑에서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향후 2주가 매우 힘든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AP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으로 실업자가 급증한 미국에서 ‘월세 대란’ 조짐이 일고 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거나 폐업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집세 거부운동’이 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4월 임차료 납부일인 1일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뉴욕에선 세입자의 40%가 월세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미국 집주인들이 예정대로 집세가 들어올 거라 예상하겠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수백만명의 실직자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 없게 됐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미 전국적으로 810억달러(약 99조7000억원)의 임차료 납부가 몰린 이날 약 25%가 지급 불능 상태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세입자가 월세를 못 내면 임대인도 대출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어 부동산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연쇄 타격이 불가피하다. AP통신도 전날 사회적 거리두기와 직장 폐쇄조치로 ‘그날 벌어 그날 살아온’ 수많은 서비스 노동자들이 당장 집세를 낼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전했다.

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한 병원에서 비닐에 싸인 코로나19 사망자 시신이 지게차에 실려 임시영안실로 사용되는 냉동트럭으로 옮겨지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에서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큰 뉴욕의 상황은 특히 심각하다. 뉴욕의 임대인과 부동산업계는 이 지역 세입자의 40%가 4월 임대료를 건너뛸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불과 한 달 만에 수백만명 뉴욕 시민의 삶이 뒤집어졌고 그들 중 상당수는 직장을 잃고 청구서 지불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시 세입자 단체인 대도시주택협의회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7%는 4월 임대료를 내기 어렵다고 답했다. 브루클린의 한 공유 아파트에 월세 600달러를 내고 사는 20대 청년은 NYT에 “당장 먹을 음식을 살 여력도 안 된다. 도저히 집세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뉴욕시 세입자는 약 54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3분의 2에 달한다. 이중 상당수가 월세를 내지 못하면 임대업자들도 상환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뉴욕시 임대인 모임인 임대안정협회 관계자는 “지금의 경제위기가 뉴욕시 부동산 시장 붕괴를 촉발할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우려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은행에 주택담보대출 상환을 3개월 면제하라고 촉구했지만 은행에 이를 강제할 권한은 없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미국에선 실업 여파가 극심해질 5월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질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3월 둘째주까지만 해도 약 28만건에 그쳤던 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셋째주 328만3000건으로 급증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대량 실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뉴욕을 비롯해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미국 대도시들은 집세를 못 낸 임차인의 강제 퇴거를 잠정적으로 금지한 상태다. 그러나 집세 거부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렌트 스트라이크 2020’은 집세를 유예할 게 아니라 면제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홈페이지에 주요 도시별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직 리스트를 올려놓고 시민들의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미 존스홉킨스대 집계에 따르면 미국의 코로나 환자 수는 18만8000명을 넘어섰다. 하루 만에 2만5000명이 증가해 코로나19 진원인 중국보다 두 배 많아졌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