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채권 팔고 연준이 매입하는 ‘머니타이징’ 유력
영국 중앙은행이 먼저 이 방식 도입 검토 들어가
문제는 채권시장 불안, 인플레 관리
미국 중앙은행과 행정부가 통화와 재정정책을 총동원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나섰으나 당초 기대와는 달리 경기가 V자로 반등할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31일 미국 경제성장률이 1분기 9%, 2분기 34% 각각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불과 일주일전 전망치 -6%, -24%보다 더 비관적으로 변했다.
이처럼 경제충격의 강도가 더 세지는 것 만큼이나 회복 속도도 길어질 것이라는 게 월가의 분위기다. 노무라증권은 2024년까지 코로나19 여파가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우려 속에 최근 2조2000억달러의 경기부양책을 통과시킨 미 의회는 추가 부양책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이 부양패키지는 길어봐야 한달 정도 버틸 수 있는 실탄에 불과한데 코로나 확진자 증가세는 수그러들기는 커녕 악화일로다.
민주당 소속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의 조치는 (코로나19에 따른 충격) 완화에 관한 것이며 매우 큰 계약금(에 불과하다)”이라면서 “우리는 다음에는 완화에서 회복을 위해 갈 것”이라고 추가 부양책 추진을 시사했다.
미국은 최근 가결한 세 번째 법안인 2조200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 패키지 법안에 앞서 83억달러와 1000억 달러 규모의 긴급 예산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도 이 패키지가 “끝이 아니라 시작의 끝”이라고 말해 부양 패키지 규모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의회의 분위기에 편승해 31일 트위터에 코로나 대응을 위한 4단계 예산으로 2조달러의 인프라 예산법안을 처리하자고 요구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우리는 여전히 경기부양을 위한 다른 측면의 정책공간이 있다”고 말해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경기 충격을 막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가 의문이다. 우선 연준의 통화정책 수단도 예전같지 않다. 기준금리를 제로로 떨어뜨린 데다 무제한 국채와 모기지 채권 매입은 유동성 대책에 한정돼 있다. 당장 급한 신용경색은 막을 수는 있어도 실업구제와 기업 구조조정은 길이 다르다. 이를 정부의 재정이 감당해야 하지만 재무부 역시 단독으로 부양책을 감당하는 데 한계가 많다. 정부의 부채가 GDP의 106%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부담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은 있다. 미 의회가 통과시켜준 2조2000억 달러 패키지에 그 힌트가 보인다. 이 패키지 가운데 재무부의 구제금융 자금 4500억 달러가 그것으로 연준의 회사채 매입을 뒷받침할 보증금이라는 점이다. 연준의 정책을 행정부가 보완해준 셈이다.
따라서 미국의 다음 부양패키지에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조합 방식, 즉 상호 보완정책이 자주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것이다.
그 중에 가장 유력한 방식은 재무부가 적자 국채를 발행하면 연준이 이를 소화하는 것이다. 이를 머니타이징이라 부른다. 재정을 동원하면서도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낸다는 점에서 헬리콥터 머니에 가깝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도 몇 년 전 비슷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일명 MFFP(Money Financed Fiscal Program)로 연준에 재무부의 특수 계정을 설립하고 그 계정을 이용해 발행한 채권을 연준이 매입한 뒤 그 유동성은 정부가 계획한 공공프로젝트 또는 민간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자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이 버냉키가 던진 이 제안을 검토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문제는 정부 부채가 급격히 늘어는 걸 어떻게 감당하느냐다.
유진투자증권은 지난 31일 보고서에서 비현실적인 가정임을 전제해 정부 국채를 상각하거나 영구 보존하는 방식으로 부채문제를 해소할 수 있음을 제시해 눈길을 끈다. GDP 대비 106%인 미국의 정부 부채 가운데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제외하면 80.9%다. 연준이 보유하고 있는 국채 등 증권을 영구 보유한다고 가정하거나, 상각한다면 미 정부부채 비율은 61.7%까지 하락한다는 것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계산한다면 유럽연합(EU) 국가들의 정부 부채 비율은 현재 90.8%로 순 정부부채 비율은 66.9%로 감소하고, 유럽중앙은행(ECB)이 보유하고 있는 증권을 제외하면, 정부부채 비율은 27.3%로 하락한다. 238%나 되는 일본 정부의 부채비율은 무려 51.3%로 하락한다.
보고서는 다만 통화가치에 대한 신뢰문제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며 이 방식이 재정을 늘리는데 제한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는 극단적인 경우라고 선을 그었다.
두 번째, 채권 발행 남발로 채권시장 불안은 어찌 해소할지도 궁금하다. .
이와 관련 파이낸셜타임스는 방법이 있다고 소개했다. 통상 재정적자가 급격히 불어날 경우 이 방법에 의지하는데 재무부가 우선 단기 재무부 채권을 무제한 발행하면 된다고 했다. 얼마 안 있다가 장기 국채를 일반에 판매한 뒤 중앙은행이 이를 다시 매입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 부채는 오랜 기간 중앙은행의 자산만 늘리는 효과만 생길 뿐 장기채권 금리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문은 이 방식은 정부부채가 통제불가능한 정도로 늘지 않는 장점이 있다고 봤다. 일본은행은 2016년 여기에 장단기 금리 통제(Yield Curve Control) 목표를 추가한 QQE라는 질적 양적 완화정책을 도입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달러 발행 남발로 인한 급격한 인플레 우려가 사실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다행히 이번 코로나 위기는 공급과 수요 모두 억누르고 있는데다 인플레 수준 역시 중앙은행의 범위 안에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수요급감으로 석유가격이 바닥을 기고 있다는 점도 위안이 될 수 있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