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인력 봉쇄에 서유럽 농업 위기… 佛 “도시인들, 농촌으로”

입력 2020-04-01 17:21 수정 2020-04-01 17:29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타넨호프 농장에서 지난 22일(현지시간) 농부가 올해 처음으로 흰 아스파라거스를 수확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코로나19로 유럽 각국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사람뿐만 아니라 물자 이동도 제한하고 있다. 유럽 노동자들의 발이 묶이면서 수확철 농가에 인력난이 발생하고, 생산된 농산물의 공급도 어려워지면서 장기적으로 유럽 내 식량난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코로나19로 유럽 농가의 근심이 깊어가고 있다”면서 “유럽국가들은 지금 당장은 식량이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주요 작물을 수확하는 시기에 코로나19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각자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서유럽 지역의 농가들은 동유럽 인력에 상당수 의지하고 있다. 국경 봉쇄가 일손 부족 문제로 이어지는 이유다. 평상시에 유럽의 농부들은 여권을 소지하지 않고도 각국을 다니며 일할 수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 누구도 자국 영토를 벗어나기 어렵다. 매체는 “독일산 아스파라거스는 수확하지 못해 밭에서 썩어가고 프랑스산 딸기는 재배 관리가 안 되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 각국은 농가 인력 수급을 위해 저마다의 대책 마련에 나섰다. 프랑스는 도시의 주민들을 외곽으로 보내 농가를 돕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 농업부 장관 디디에 기욤은 지난주 “농장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프랑스 농가는 20만명의 일손을 잃었다”면서 “우리가 모두 먹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연대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레스토랑과 호텔 직원, 미용사를 비롯해 현재 일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농가로 가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프랑스 정부의 온라인 구직 게시판에는 트랙터 운전을 비롯해 와인 재배, 치즈 제조, 조경 등의 일을 할 사람을 구한다는 게시글이 줄을 잇고 있다. 근무 시작일엔 어김없이 “가능한 빠른 시일 내”라고 적혀있다.

독일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해 단기 노동자들의 유입을 금지했다. 그 결과 바바리아 주의 농부 우도 허틀라인은 커다란 곤경에 처했다. 허틀라인은 독일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식재료인 흰 아스파라거스 농장을 가지고 있다. 4월은 아스파라거스 수확철이지만 국경이 봉쇄되자 농장에서 일하던 루마니아인들은 더이상 일터로 나오지 못하게 됐다.

30일(현지시간) 독일과 네덜란드의 국경 지역 도로에 네덜란드 입국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있다. EPA 연합뉴스

허틀라인은 정부와 농업조합 등에 일손을 구해달라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독일 농식품부 집계에 따르면 독일 농가에선 30만명의 인력이 사라진 상태다. 독일 정부는 학생과 교사들을 아스파라거스 수확에 동원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유럽에서 코로나19의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이탈리아에서도 농가의 상황은 다르지 않다. 매년 이탈리아 농가로 오는 근로자 37만명의 발이 묶인 것이다. 이탈리아 당국은 현재 자국 내 농가에 있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오래 머물 것을 당부하며 체류 연장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나섰다.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농민단체인 콜디레티는 “유럽 전체가 올해 식량 자급력을 잃을 위험에 처했다”면서 “유럽은 식품 수출국으로서의 위상 역시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식량 전문가들은 농작물 재배가 어려운 것보다 생산된 농산물을 식료품 판매처로 옮기기 어려운 것이 지금으로선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국경 봉쇄가 유럽의 취약한 농업 시스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취동위 유엔 식량농업기구(FAQ) 사무총장은 “각국은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도 식량 공급 체인을 움직이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교역을 제한하는 것은 불필요할뿐만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충격을 주고 시장에 혼한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