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학생 모녀’에 된서리…제주 녹산로 유채꽃 파쇄 위기

입력 2020-04-01 16:06 수정 2020-04-02 07:09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에 위치한 녹산로 유채꽃이 파쇄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지난달 29일 녹산로에 봄의 전령 유채꽃과 벚꽃이 함께 어우러져 시선을 사로 잡고 있다. 뉴시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 만큼 찬란한 경관을 자랑하는 제주의 봄철 드라이브 명소 ‘녹산로’가 유채꽃 파쇄 위기에 처했다.

‘강남 미국 유학생 모녀’가 녹산로가 속한 표선면 일대를 다녀간 뒤 주민들이 코로나19 감염 공포에 사로잡히며 외부인 차단을 위해 평년보다 일찍 유채꽃 길을 갈아 엎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1일 제주 서귀포시에 따르면 ‘녹산로’는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를 지나는 10㎞ 길이의 왕복 2차선 도로다. 봄이면 노란 유채꽃과 분홍 벚나무가 도로 옆을 가득 수놓아 장관을 연출한다. 매년 봄이면 꽃구경을 나온 상춘객들이 수만명에 이른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됐으며, 제주에서 가장 큰 유채꽃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녹산로가 위치한 가시리 마을 주민들이 최근 서귀포시에 녹산로 일대 유채꽃을 평소보다 일찍 파쇄해줄 것을 제안했다.

최근 미국 유학생 모녀가 제주를 다녀가며 표선면 곳곳이 임시 폐쇄된 것을 목격한 주민들이 코로나19 감염의 공포를 체감하게 됐기 때문이다. 마을 식당과 슈퍼 등 동네 곳곳에서 방문객들을 마주하는 주민들로서는 이번 봄 만큼은 외지인과의 만남을 피하고 싶어진 것이다.

서귀포시는 녹산로 일대에 매년 유채꽃과 코스모스를 번갈아 파종하며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유채꽃의 경우 보통 4월말에서 5월 초 사이 파쇄하고 코스모스를 파종하는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주민들이 만개한 꽃밭을 갈아엎어달라고 요청해 와 현재 내부 논의에 들어갔다.

코로나19 확산 우려에 따라 녹산로 일대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주유채꽃축제까지 취소가 결정됐지만, 주민들은 봄이 깊어갈수록 방문객 숫자가 더 늘어날 것을 우려해 이 같이 제안했다.

정윤수 가시리장은 1일 본지와 통화에서 “다음주쯤 서귀포시와 최종 파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며 “주민 1500명 중 노인 인구가 상당히 많아 감염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