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정한근 1심 징역 7년… 법원 “해외도피 어려움, 자초한 것”

입력 2020-04-01 15:17
도피 생활 중 해외에서 붙잡힌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 전 부회장이 지난해 6월 2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뉴시스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하고 해외에 은닉한 혐의를 받은 정한근 전 한보그룹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다. 정 전 부회장은 고(故)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로 국외로 도피한 지 21년 만인 지난해 붙잡혀 국내로 송환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부장판사 윤종섭)는 1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재산국외도피) 등 혐의로 기소된 정 전 부회장에게 징역 7년과 추징금 401억3193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횡령과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9일 정 전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정 전 부회장은 1997년 11월 한보그룹이 부도가 나자 자회사 동아시아가스주식회사가 보유한 러시아 석유회사 주식 900만주를 실제로는 5790만 달러에 매각하고도 2520만 달러에 판 것으로 꾸며 320억여원을 횡령한 다음 해외에 은닉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동아시아가스 자금 66억여원을 횡령한 혐의 등도 받고 있다.

재판부는 “정태수 회장이 재산국외도피와 횡령에 관해 최종 의사결정을 했더라도 피고인은 아들로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며 “피해회사(한보)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지위에 있었다. 국외 도피 중에도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소가 제기되고 구속을 우려해 공범에게 범인도피죄를 저지르도록 교사했고, 공문서 위조도 공모했다”며 “나아가 도피 중 재산국외도피와 횡령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정 전 부회장이 해외 도피 중 가족과 지인을 만나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생각한다면서도 이를 양형에 참작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는 피고인이 자초한 것으로 스스로 야기한 것을 법원이 유리한 정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정 전 부회장은 1998년 수사 도중 잠적했고,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를 앞둔 2008년 9월 그를 기소했다. 중국으로 도피했던 그는 홍콩을 오가다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친구 여권을 이용해 미국 시민권 신분으로 거주했다. 그는 2017년 에콰도르로 간 뒤 파나마를 경유해 미국으로 가려다 지난해 6월 파나마 이민청에 체포됐다. 이후 브라질 상파울루,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거쳐 지난해 6월 국내로 송환됐다. 부친 정태수 전 회장은 2018년 12월 에콰도르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