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광화문 사거리에는 횡단보도가 없었다. 차도 건너편으로 가려면 지하도나 육교를 이용해야 했다. 그 시절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은 난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광화문 사거리에 건널목이 놓인 건 언제부터일까.
한 시민단체는 1998년 9월 광화문이나 신촌 로터리 등 서울 시내 10곳에 횡단보도를 설치해 달라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시민들 반응은 뜨거웠다. 결국 그해 12월 광화문 사거리에는 남북 방향으로 횡단보도 2개가 생겼다. 7년 뒤인 2005년에는 동서 방향으로도 건널목이 그려졌다. 별것 아닌 일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것은 서울 거리의 주인이 자동차가 아닌 ‘사람’이라는 사실을 천명한 일대 사건이었다. 광화문 사거리에 횡단보도 4개가 완성된 2005년 4월 20일 서울 도심에는 이런 현수막이 내걸렸다. “이제야 광화문 횡단보도를 시민 여러분께 돌려드립니다.”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광화문 사거리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보자. 당시 이 거리에 횡단보도가 없었던 이유는 자동차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자동차가 빨리 갈 것인가가 지상과제”였기에 보행자를 향한 배려는 깡그리 무시되곤 했다. 당시 도로교통법에는 육교나 지하도 인근 200m 이내엔 다른 횡단시설을 만들 수 없게 규정돼 있었다. 이런 법령 탓에 서울 2기 지하철(5~8호선)이 만들어지던 시절엔 지하철 개통과 함께 횡단보도 수십 개가 가뭇없이 사라지곤 했다. 다른 도시들 역시 마찬가지다.
시민의 이동권이 얼마나 지엄한 가치인지 일깨운 주인공 중엔 장애인들이 많았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단체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이벤트를 벌이는 것만으로도 우리네 도시의 아킬레스건을 깊숙이 찌르곤 했다. 장애인이 버스를 타려 하자 버스나 지하철은 출발할 수 없었다. 이들은 시청역 선로를 점거했고 단식 농성을 벌였다. “나도 이 도시를 걷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서울시는 2004년이 돼서야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를 약속했다.
‘우리가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를 읽으면 이렇듯 도시 곳곳에 무늬처럼 남아 있는 시민들의 분투 흔적을 만나게 된다. 저자는 도심 속 생태 이야기를 풀어낸 ‘시티 그리너리’(2017)로 주목받은 저술가 최성용이다. ‘우리가 도시를…’는 시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벌인 투쟁의 기록을 일별한 작품으로 인상적인 이야기가 한가득 담겨 있다.
서울광장의 역사를 복기한 내용이 대표적이다. 서울시청 앞은 오랫동안 “교통광장”이었다. 68년 전차 운행이 중단되고 광장에 분수대가 들어서면서 시민들은 이곳을 걸어서 돌아다닐 수 없었다. 96년 시민단체들은 서울시청 앞을 “보행 광장”으로 만들자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듬해 교통 체증을 이유로 시민단체의 제안을 거부했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였다. 시민들은 거리응원을 통해 “광장 문화”를 체감했고 광장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서울시는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듬해 5월 시청 앞을 보행 광장으로 바꾸었다. 저자는 “1997년과 2002년의 차이는 얼마나 많은 시민이 함께했느냐의 차이였다”며 “시민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면 도시를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책에서 주목할 만한 지점은 광화문 사거리나 서울광장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듯 도시의 주인이 누구인지 묻는 대목이다. 생각해보면 한국의 대다수 도시는 너무 많은 공간을 자동차에 내어주고 있다. 2018년 기준 서울시에 등록된 자동차는 312만4651대에 달한다. 이들 차량을 주차하려면 여의도 면적의 18배인 약 52.7㎢가 필요하다. 저자는 “이렇게 넓은 면적을 자동차 주차를 위해 할당하는 방향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라고 묻는다.
‘도로 증가→교통난 해소’라는 공식이 틀렸음을 지적한 부분도 밑줄을 긋게 만든다. 가령 2005년 청계전 복원으로 청계천 주변 12개 차선은 4차선으로 줄었지만 도심의 차량 평균 속도엔 변함이 없었다. 스페인의 한 작은 도시는 17년 전 모든 차량의 도심 진입을 금지했다. 교통 문제나 환경을 염려해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차 없는 도시가 되면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뀔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 도시 시민들은 만족해하고 있을까. 참고로 ‘차 없는 도시’ 정책을 펼친 이곳 시장은 다섯 번째 연임에 성공했다고 한다.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려면
경남 통영 동피랑, 부산 감천마을, 서울 이화동…. 이들 동네의 공통점은 ‘벽화마을’로 유명하다는 것이다. 주택가 담벼락에 개성 넘치는 벽화가 그려지면서 관광객이 모여들었고, 이들 동네는 “지자체의 로망”이 됐다. 벽화마을이 인기를 끌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벽화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를 벌였다. 전국엔 100곳 넘는 벽화마을이 생겼다.
벽화마을 중에선 관광객 유치에 성공한 곳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마을에서 벽화는 “흉물”이 돼버렸다. 벽화마을의 성공 사례처럼 여겨지는 이화동에서도 벽화는 지워지고 있다. 몰려드는 관광객 탓에 주민들의 겪는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어서다.
벽화마을은 탁상행정의 대표적 사례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벽화마을의 벽화가 대부분 낡고, 폐허처럼 변하는 이유는 그곳에 벽화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애초에 없었으며, 벽화를 필요로 하는 주민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조금씩이라도 살고 싶은 마을로 바꿔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마을에서는 (마을 만들기) 사업의 본질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지속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도시를…’는 시민들을 상대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독려하는 작품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진 않다. 도시나 동네 행정에 가담하기엔 우리네 삶은 너무 고단하고 팍팍하다. 반상회에 참석할 시간조차 내기도 쉽지 않은 게 한국인의 삶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부담 느끼지 않고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자신이 원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행동하는 시민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내가 경계하는 것은 도시가 획일적으로 변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적어두었다. “시민들이 도시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경우, 도시는 한쪽 방향으로만 바뀔 우려가 있다. 도시의 변화를 통해 직접적‧금전적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에 맞춰 도시를 바꿔간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