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전 총리 “아베 거짓말했을 것, 질려버렸다”

입력 2020-03-31 17:49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전 총리. 교도 연합뉴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가 정치적 제자인 아베 신조 총리에게 사학비리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자신의 바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아베 총리의 거취까지 거론하며 비난의 화살을 날린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31일 주간지 ‘슈칸아사히’(週刊朝日)에 실린 인터뷰에서 모리토모 학원의 국유지 헐값 매입 의혹과 관련된 결재 서류 조작 사건 등을 거론하며 “누가 봐도 (아베 총리가) 관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국유지 매각과 관련된 문서 조작 의혹으로 자살한 재무성 직원이 남긴 ‘윗선 지시’ 취지의 수기를 그의 부인이 최근 공개했는데, 고이즈미 전 총리가 이 문제로 아베 총리를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애초에 공문서를 고친 것은 아베 총리가 ‘나 자신이나 아내가 관여했다면 총리도 국회의원도 그만둔다’고 말한 것부터 시작됐다”며 “국회에서 총리가 관여했으면 그만둔다고 말했으니 결국 책임지고 그만두지 않을 수 없다”고 화살을 겨눴다.

그는 권력과 유착해 국유지를 싸게 샀다는 의혹을 산 모리토모 학원이 세우려고 한 초등학교 명예 교장에 아베 총리 부인인 아키에 여사가 취임한 것을 들며 “아베 총리가 그 상황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까. 거짓말했을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그는 사태가 벌어진 이유로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을 들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일본 정부 행사인 ‘벚꽃을 보는 모임’ 초청자 명부가 파기된 것에 관해 “이런 일을 잘도 했구나하고 질려버렸다”며 “장기 정권으로 자신이 붙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임기 종료가 내년 9월로 다가온 가운데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이 아베 총리의 임기 연장을 거론하는 것에 관련해서는 “내년 9월에 임기 만료가 되면 그만두지 않겠냐. 총리는 격무이고 이 이상 길게 하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아베 정권이 내놓은 경기 부양책에도 입을 열었다. 그는 “코로나19 대책으로 국민에게 수십만엔(수백만원 수준)을 나눠 준다고 말하는데, 흩어서 뿌리는 것은 좋지 않다”며 “소비세 제로도 그렇다. 앞으로 소비세는 중요한 재원”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아베 총리의 숙원인 개헌에 관해서는 원전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원전 문제라는 가능한 것도 안 하고 헌법 개정은 불가능하다. 헌법 개정을 하려면 야당을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퇴임 후 공개적으로 탈원전 활동을 해왔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아베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린다. 재임 중 아베 총리를 관방부장관, 관방장관, 자민당 간사장으로 기용했던 터다. 여기에 아베 총리는 고이즈미 퇴임 후 바통을 넘겨받아 자민당 총재와 일본 총리로 취임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일본의 원전 재가동 정책에 관해 종종 쓴소리를 했지만 아베 총리의 거취까지 거론하며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