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분담금 규모를 둘러싼 한·미 양국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주한미군 내 한국인 근로자의 무급휴직 사태가 현실화됐다. 주한미군이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미체결을 이유로 한국인 근로자에게 무급휴직을 강제로 부여한 것은 한·미동맹 67년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한·미 군 당국의 방위 태세 약화는 물론, 양국 간 신뢰 관계도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무급휴직 대상자는 전체 한국인 근로자 9000여명 중 절반에 해당하는 4500명가량으로 추산된다. 우리 정부는 무급휴직자를 위해 긴급 생활자금 대출 등 지원 방안을 검토 중이다. 주한미군은 기지 기능 유지를 위해 약 3000여명을 필수인력으로 분류해 한시적으로 출근토록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필수 인력의 인건비는 미국 정부 예산으로 지급한다.
한국인 근로자 무급휴직은 우리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미국 측의 협상카드 성격이 짙다. 우리 정부는 무급휴직 현실화를 막기 위해 인건비만 따로 타결하자는 제안을 내놨지만 미국 측은 이를 일축했다. 결국 주한미군이 설정한 시한인 1일까지 SMA 미체결 상황이 이어지면서 한국인 근로자가 무더기로 무급휴직에 들어가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게 됐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31일 정례브리핑에서 “무급휴직은 통보상 내일(1일) 시작될 예정이지만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협상대로 진행돼야 하는 것”이라며 “어떠한 경우에도 조속한 타결을 위해 최우선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으로서도 주한미군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기지의 필수 부분을 제외한 모든 기능이 마비됨에 따라 미군 장병들의 피로와 불편함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한미군 차원의 코로나19 방역 작업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코로나19 탓에 연기했던 올해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아예 치러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최근 “무급휴직은 군사작전과 준비태세에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무급휴직 사태는 현재로선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가까운 시일에 SMA가 타결되더라도 비준은 21대 국회 개원 이후인 6월에나 가능하다. 특히 미국은 한국이 40억 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방위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특별 관심사여서 미국 협상단이 재량을 발휘할 여지도 좁다. 우리 측은 미국 요구가 비현실적이며 10% 안팎의 상승폭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맞서는 중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국은 필수 인력만 갖고 최소 수준에서 기지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라며 “주한미군은 한동안 100% 기능을 못하고 상당 부분 축소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맹이란 같은 가치를 공유하며 외부 위협에 대응하자는 취지인데 돈 문제 때문에 어려움이 생기면 상호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성은 손재호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