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구속)씨의 공범으로 먼저 기소된 ‘태평양’ 이모(16·구속기소)군의 사건을 심리할 재판부가 교체됐다. 이군 사건 재판장을 향해 “성범죄자들에게 너그러운 판결을 내린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이뤄진 영향이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오른 주장대로 재판부 재배당 결정이 이뤄진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이군 사건을 형사20단독 오덕식 부장판사에서 형사22단독 박현숙 판사로 재배당했다고 30일 밝혔다. 법원 관계자는 “국민청원 사건과 관련해 담당 재판장이 사건을 처리함에 현저히 곤란한 사유가 있다고 서면을 제출, 재배당 요구를 했다”고 설명했다. 오 부장판사의 교체는 서울중앙지법의 판사 배치와 주요 사건 배당 업무를 총괄하는 김병수 형사수석부장이 최종 결정했다.
오 부장판사가 이군 사건을 맡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지난 27일 올라왔다. 이 청원은 조씨 등의 범죄에 대한 공분과 더불어 41만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오 부장판사를 가리켜 “성인지감수성 제로에 가까운 판결, 피해자를 2차 가해한 판사”라고 주장했다. 오 부장판사가 2018년 가수 고(故) 구하라씨를 불법 촬영, 폭행·협박한 혐의로 기소된 최종범씨의 1심 재판을 맡아 불법촬영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이력을 비난한 것이다.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는 “이미 배당된 사건을 담당하기 어려울 경우 재판장이 직접 그 사유를 기재한 서면을 제출해 사건 재배당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 규정 때문에 재배당이 이뤄질 때는 판사의 질병이 사유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오 부장판사가 직접 제출했다는 ‘현저히 곤란한 사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법원 관계자는 “국민청원 뿐 아니라 구하라씨 사건 판결 등으로 인한 부담감도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조씨가 운영하던 ‘박사방’ 회원 출신인 이군은 지난해부터 지난달까지 ‘태평양’이란 이름으로 아동 성착취물 유포 등의 범행을 저질러온 혐의를 받고 있다. 조씨의 검거 이후 이군이 이미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졌고, 심리를 맡은 판사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민중당은 “가해자 중심적으로 솜방망이 판결을 내려온 판사는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항의서를 접수했다. 당원들이 법원에서 기습 시위를 하기도 했다. 법원 관계자는 “국민청원 등으로 재배당이 이뤄지는 건 이번이 사실상 처음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편 이군은 이날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