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는 미국이 고민에 빠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서 한국, 대만 등 처럼 확진지의 동선을 파악해 대중에게 알리는 게 감염 저지에 효과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코로나19가 나이, 인종, 성별, 계층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인간의 삶에 침투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가 정보공개에 우선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에서는 주(州)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코로나19 확진자와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는데, 대다수 주가 최소한의 정보만을 제공한다는 원칙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는 확진자 가운데 연령대를 개략적으로만 공개하고 있다. 발생지역은 베버리 힐스·산타모니카·멜로스 등 140개가 넘는 도시별로 세분화해서 발표하고 있다.
콘트라 코스타 카운티의 경우 코로나19 전체 확진자 수만 공개하고 “개인과 공동체 보호를 위해 다른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산타클라라 카운티는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서명한 엄격한 개인 의료정보 보호법(HIPAA)을 근거로 각 도시에서 몇 명의 확진자가 나왔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미국 뉴욕대 의과대학 생명윤리학과 아서 캐플런 교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HIPAA는 진료기록을 종이에 기록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확진자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생명윤리를 전공하는 글렌 코헨 교수는 코로나19와 같은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상황에서 정보를 많이 공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 공중보건대학 전염병학을 연구하는 조지프 루나드 교수는 “우리는 지금 미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거의 전적으로 한국, 중국, 이탈리아 등 다른 나라에서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배우고 투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와 대만은 미국과 정반대 방식으로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NYT는 이들 정부가 코로나19 확진자에 번호를 매겨 거주지역뿐만 아니라 직장, 교회 등 확진자가 발을 들였던 곳들을 투명하게 공개한다고 전했다.
특히 대만 정부는 출입국관리기록과 의료기록을 통합 관리함으로써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큰 지역에 다녀왔는지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제이슨 왕 박사는 “대만의 조치 중 일부는 사생활 침해 때문에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도 “대만 정부의 적극적인 동선 공개와 추적으로 코로나19를 통제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한편, 인구 2381만명의 대만에서 나온 코로나19 확진자는 298명이지만, 인구가 그 10분의 1 수준인 뉴욕시 퀸즈 자치구(borough)에서는 1만여명이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았다고 NYT는 전했다.
30일 오후 4시 현재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집계 기준 미국 전역에서 나온 코로나19 확진자는 14만3025명으로 전 세계 확진자의 5분의 1을 차지했다.
한명오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