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적으로 확산되자 중국의 진단 키트 제조업체들이 앞타퉈 제품 수출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가 중국 내에서 승인받지 못한 업체들인데다 각국에서 부실 제품을 이유로 폐기하거나 불만을 제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그럼에도 당장 중국과 한국 외에 공급처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중국 내 공장들은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느라 풀 가동되고 있다.
3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쑹하이보 중국 체외진단기기 협회장은 중국 내 진단키트 생산업체 102곳이 유럽시장에 수출할 수 있도록 허가 받았으나 상당수는 중국 내에서의 판매 허가는 받지 못한 업체들이라고 밝혔다.
중국에서 실시간 유전자증폭(RT-PCR) 진단 키트의 판매 허가를 받은 기업은 13곳에 불과하고, 8개 업체는 간단한 항원 검사 키트 판매 허가만 받는 등 중국 기준의 적격 업체는 21개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중국의 진단 키트 생산회사 1곳에만 판매 허가를 내주고 있으나 유럽 각국은 당장 물량이 부족하다보니 웬만한 업체들에게 판매를 허용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후난성 창사의 한 생명공학 회사 관계자는 “중국에서 동물용 진단 키트 판매 허가를 받았으며, 최근 유럽에서 승인을 받고 제품 수출을 위해 새로 개발한 코로나19 진단 키트 생산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난징의 한 바이오 기업 관계자는 “중국에서 진단키트 인가를 신청하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승인 후에는 이미 전염병이 끝났을수 있다”며 해외로 진단키트를 수출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지난 2월 유럽연합(EU)에서 제품 인증을 받았고, 현재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헝가리, 프랑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등에서 주문을 받아놓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주문이 너무 많아서 직원들이 주 7일간 오후 9시까지 근무하고 있다”며 “직원들에게 매일 3 교대 근무를 하도록 해 24시간 풀 가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최대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의 선두주자인 BGI는 개발한 RT-PCR 진단키트가 유럽통합규격인증(CE) 획득에 이어 미국 당국의 판매 승인을 받았다며 지난달 하루 20만 개였던 진단키트 생산량을 최근 60만 개로 늘렸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2월 초 우리 진단 키트의 절반은 중국에, 절반은 해외에 판매했다”며 “도시봉쇄 와중에도 우한 공장에서 하루 20만 개의 키트를 생산하기 위해 수백 명의 인력으로 공장을 24시간 계속 가동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에서 승인받지 못한 업체들의 제품이 유럽에 수출되면서 진단 정확도가 크게 떨어지는 부실 제품이 드러나는 등 제품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다.
중국은 3월 초 5억5000만 개의 마스크와 550만 개의 진단키트 등 4억3200만 유로 규모의 제품을 스페인에 수출했지만, 곧바로 품질문제가 제기됐다.
스페인 신문 엘파이스는 지난주 중국 선전의 바이오이지 바이오테크놀러지사가 공급한 진단 키트의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출률이 30%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스페인 정부는 회사 측에 제품 교체를 요청했다. 이 회사는 중국 상무부가 제시한 공급자 승인 명단에 들어있지 않았다. 체코에서도 중국산 진단키트 검사 결과 80%에서 오류가 발견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하지만 바이오이지사는 장비 결함을 부인하면서 스페인 연구원들이 지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고 SCMP는 전했다.
필리핀 당국도 중국에서 수입된 진단 키트의 정확도가 40%에 불과해 폐기했다고 지난 28일 발표했다. 터키 정부 역시 중국에서 들여온 코로나19 진단키트 샘플의 정확도가 30∼35%에 불과해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네덜란드는 최근 중국 제조업체가 공급한 마스크가 1·2차 시험에서 품질 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판명돼 전량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중국 업체의 마스크가 얼굴에 밀착되지 않거나 필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결함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세계 각국은 진단 키트 등 의료용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중국 제품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일랜드는 매주 10만개의 진단 키트 등 의료 장비를 운송하기 위해 5대의 대형 항공기를 중국에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첫 번째로 29일(현지시간) 도착한 개인용 보호장비는 총 2억800만 유로 (약 2813억원)에 이른다.
BGI 관계자는 “현재 하루 60만 개의 진단 키트를 생산하고 있는데, 관련 절차가 복잡해 공장 증설이 쉽지 않다”며 단기간에 진단키트 생산을 크게 늘리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