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갇혀지내니…미국, 범죄율 줄었지만 가정폭력·아동학대 우려

입력 2020-03-30 09:18 수정 2020-03-30 11:40
미국 대도시서 범죄 줄었으나 낙관 일러
경제난에 외출금지로 가정폭력·아동학대 우려
경찰 피해 확산…뉴저지 경찰 700명 ‘확진’
911 긴급전화해도 ‘열 있나’ 묻는 실정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를 쓴 미국 뉴욕 교통경찰이 지난 27일 뉴욕 거리에서 순찰 활동을 펼치고 있다. AP뉴시스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면서 외출 금지를 의미하는 자택 대피(stay at home) 명령을 내려지기 시작한 지난 3월 중순 이후 워싱턴·로스앤젤레스·시카고·애틀랜타·댈러스 등 12개가 넘는 대도시에서 범죄율이 눈에 띌 만큼 줄어들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내에서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큰 뉴욕에서 지난주 흉악범죄가 17% 감소했다. 캘리포니아주의 산호세에선 지난 20일 자택 대피 명령이 발효된 이후 일주일 동안 강력 범죄는 전년도에 비해 44% 줄었고, 재산을 노린 범죄는 36% 떨어졌다.

WP는 자체 분석 결과, 많은 도시에서 재산 관련 범죄는 10∼20%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다만 강력 범죄는 상대적으로 크게 줄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일부 도시의 경찰들은 강력 범죄가 감소했다고 보고했다고 지적했다.

범죄율이 감소했다는 데이터들은 나오지만 안심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이 추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범죄율이 크게 감소한 산호세의 에디 가르시아 경찰청장은 WP에 “우리는 미식축구 경기의 1쿼터에 있다”면서 “1쿼터에서 잘하고 있다고 나는 승리의 춤을 추지 않을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다른 걱정도 있다. 경찰과 범죄 전문가들은 경제난이 가중하고 생활고가 극심해질 경우 가정 폭력과 아동 학대가 급증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상황이다.

강간·학대·근친상간을 막기 위한 전국네트워크의 헤더 드레브나는 “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에 자신의 안전을 우려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현저하게 늘었다”고 말했다.

폴 파젠 덴버 경찰청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외부 활동이 사실상 막힌 것과 관련해 “젊은이들과 다양한 세대들이 같은 가정에 갇혀 많은 스트레스 속에 가까이 지내고 있다”면서 “우리는 그 점을 우려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찰들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뉴욕에서는 최소 550명의 경찰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WP는 보도했다. 미국 내 피해 2위인 뉴저지에서는 700명이 넘는 경찰들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뉴올리언스 경찰당국은 전체 경찰의 5%가 코로나19로 아프거나 자가격리 중이라고 밝혔다.

인명을 구조하는 소방관들의 피해도 늘고 있다. 뉴욕 소방당국은 소방관들과 소방 소속 일반 공무원들을 합해 235명이 코로나19 확진자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피해가 확산되자 미국 경찰은 자구책으로 일반인과의 접촉을 줄이고 있다. 시카고 경찰은 차나 도보를 이용한 순찰을 40∼60%로 축소했다. 댈러스 경찰은 폭행이나 성폭행, 강도 등의 범죄에 대해선 대면 접촉 수사를 계속하고 있으나 공공 장소에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와 좀도둑, 물건 분실 사건 등에 관련해선 출동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미국 경찰은 강력 범죄를 대비한 순찰이나 응답에 여전히 역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911 긴급전화를 건 사람들에게 열이 있는지를 묻는 일이 일반화되고 있다.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해 답변하기 꺼리는 사람들에 대해선 응답을 하지 않는 경우도 빚어지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또 열이 있다고 말한 사람들의 현장에 출동할 경우에는 개인보호장비를 챙기거나 창문을 올리지 않은 채 대화를 나누는 상황도 발생한다.

미국 경찰은 코로나19가 교도소·구치소 내에서 확산될 경우를 우려해 경범죄에 대해선 구속도 꺼리는 실정이다. WP는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에 대한 미국 경찰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