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27일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3년 임기)에 성공했지만 재계에선 본격적인 한진가(家) 남매의 경영권 다툼은 이제부터라고 보고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측은 지난해 말 주주명부 폐쇄(이후 매입 지분은 이번 주총의 의결권이 없음) 이후에도 꾸준히 한진칼 지분을 사들여 지분율을 42.13%까지 끌어올렸다.
조 회장은 29일 입장문을 내고 “이번 주총에서 현 경영진에 신뢰를 보내준 주주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해 회사의 체질을 한층 더 강화하는 계기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선 조 회장이 주총 이후에도 경영권 다툼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당분간 소액주주의 표심과 명분을 지키기 위해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간 조 회장 측에 맞서는 3자 연합(조 전 부사장, KCGI, 반도건설)은 조 회장이 항공업을 이끌기엔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공격해왔다. 후보로 내세운 사내이사·사외이사가 모두 부결된 주총일에도 “한진그룹이 현재 최악의 경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능력 있고 독립적인 전문경영인들이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지적했었다.
한진그룹은 당장의 유동성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연내 대한항공의 송현동 부지와 왕산레저개발 지분, 제주 파라다이스호텔 부지 매각 등 유휴자산 매각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지난 24일 정부가 코로나19 피해 기업 지원 대상에 대기업도 포함시키겠다는 방침을 내놓으면서 금융지원도 기대하고 있다.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금 확충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편 3자 연합은 임시 주총이나 내년 정기 주총에 대비해 당분간 추가 지분 매입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3자 연합 측이 확보한 지분은 42.13%로 조 회장 측의 42.39%를 바짝 따라잡고 있다. 의결권 50.1%를 선제 확보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추측이다.
20%에 가까운 소액주주의 다수가 ‘반(反)조원태’라는 점은 3자 연합 측에 긍정적인 요소다. 금융업계에선 이번 한진칼 주총에서 조 회장 연임 안건에 찬성이 56.67%, 반대가 43.27% 나왔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조 회장 측을 선택한 소액주주 의결권 지분은 7.97%, 3자 연합을 지지하는 소액주주 지분은 8.02%로 추정하고 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다수의 의결권 자문기관이 조 회장 연임에 찬성을 권고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액주주들에게 여전히 반 조원태 기조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다만 임시주총이 열리더라도 조 회장을 사내이사직에서 해임하는 건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해임의 경우 의결권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하기 때문이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