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에게 “새끼손가락을 올리고 주인님께 보여 보라”며 나체 사진을 찍게 해 전송받은 사회복무요원 이모씨가 지난해 항소심 법원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됐지만 감형된 것이다. ‘새끼손가락 포즈’를 요구하는 것은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씨의 특징이기도 하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사회 내에서 잘못을 반성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조씨 사건 이후 법조계에서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미온적이었다”는 자성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한규현)는 지난해 5월 30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 대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1심에서 80시간이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시간은 40시간으로 줄었다. 이씨는 2018년 2~4월 청소년 3명에게서 60회에 걸쳐 나체 사진과 영상을 전송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다른 여성의 신체 사진을 트위터 등에 게시한 혐의도 받았다.
조씨 검거 이후 이씨의 범행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이씨는 미성년자에게 ‘카카오톡’으로 나체 사진 전송을 요구하며 “새끼손가락 올리고 주인님께 보여봐”라고 말했다. 조씨도 피해 여성들에게 ‘약속’을 의미하는 새끼손가락 보이기를 요구했다. 특정 신체 부위 사진을 요구한 것도 조씨와 유사했다.
의정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박정길)는 지난해 1월 이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죄의 법정형인 ‘무기징역 또는 징역 5년 이상’보다 낮았다. “피해자들이 느꼈을 성적 수치심, 정신적 고통이 매우 클 것”이라면서도 이씨가 범행을 뉘우친다는 점, 영리 목적이 아니었다는 점 등을 감안한 것이다.
항소심에서는 이씨에게 유리한 정상이 더욱 참작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신체 부위 근접 촬영이라 피해자 신원이 노출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이씨를 두고 “대학에 학적을 둔 사회복무요원으로서 부모와 동거하고 있어 사회적 유대관계가 두텁다” “잘못을 반성하며 성실히 살아갈 기회를 주는 게 재범 방지 목적에 부합한다”는 판단도 제시했다.
이씨의 집행유예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합의가 없던 상황에서 감형에 감형이 거듭된 일은 이례적이다”는 반응이 나왔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아동 성범죄를 보는 시선이 국민적 잣대에 못 미친다는 자성은 계속됐다. 최근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아동·청소년 디지털 성범죄 양형 설문조사 과정에서는 “선택지의 양형 자체가 낮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울의 한 법관은 “범죄자들은 멀리 달아나는데 법이 늦다”고 말했다.
양형 기준이 없다시피 하니 성인지 감수성의 차이에 따라 그간 판결이 들쭉날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사인 이수연 변호사는 29일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 등에 대한 법정형 자체는 무거우나 처벌 수위는 미치지 못했다”며 “조씨 사건을 계기로 달라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구자창 구승은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