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국민일보가 국토교통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해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주정심은 2015년 출범 이후 현재까지 총 27차례 회의를 개최했다. 이 중 단 2차례만이 대면회의로 진행됐다. 나머지 25차례는 모두 서면회의로 대체됐다. 출범 이후 열린 부동산 정책 심의 중 92%가 서면회의였던 셈이다. 모든 회의의 안건은 별다른 이견 없이 ‘가결’로 종료됐다.
주정심은 정부의 주요 부동산 정책을 심의하고 방향을 결정하는 기구다. 어디를 개발하고 어디를 규제할지 결정하기 때문에 책임이 막중하다. 또 택지개발지구와 투기과열지구,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어떤 지역에 적용하고 해제할 것인지도 판단한다. 건설사가 짓는 주택의 표준이 되는 최저주거기준도 주정심을 거쳐 설정한다. 최저주거기준이 바뀌면 집의 공급 면적과 최소 설비, 투입 건축비도 모두 달라진다. 주정심의 정책 판단에 따라 한국의 부동산 지형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주정심의 책임과 역할이 크기 때문에 주정심 운영의 기반이 되는 주거기본법, 주정심 운영세칙에서는 대면회의를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서면회의는 안건의 내용이 경미한 경우, 긴급한 사유로 위원이 출석하는 회의를 개최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 천재지변이나 그 밖의 부득이한 사유로 인해 위원의 출석에 의한 의사정족수를 채우기 어려운 경우로 한정된다. 특정한 제약이 없는 이상 서면심의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서면회의를 남발하다보니 대면회의에서 위원들이 정책에 대한 의견을 활발하게 교환하고 정책을 개선할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국민의 주거환경에 영향을 미칠 주요 사안도 깊이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서면회의는 국토부가 위원들에게 심의 안건과 내용을 문서로 보내면 주정심 위원들이 찬성 혹은 반대를 표하고, 부대 의견을 문서로 회신받는다. 회신 이후 국토부가 어떻게 위원 의견을 정책에 반영했는지 알 수 없다. 서면으로 심의할 경우 회의록도 따로 남지 않는다. 국민 대다수에서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이 ‘깜깜이’인 셈이다.
국토부 스스로가 주정심의 위상을 허무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국토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유예기간을 최근 3개월 더 연장하면서 별도로 주정심 심의를 거치지 않았다. 당초 분양가상한제 시행과 유예 결정은 주정심 심의를 거쳐 의결됐던 사안이다. 이 때문에 추가 연장 여부도 주정심 심의를 거쳤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한 정부 핵심 관계자 “주정심에서 심의해서 의결했던 정책은 개정할 때도 주정심 판단을 거쳐야 한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라는 시급한 사정이 있었다면 서면으로라도 주정심을 개최해 올바른 절차를 밝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종의 정부 월권 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분양가상한제 유예기간 연장 여부는 주정심 심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 외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국토부는 주정심 위원 구성, 활동 세부 내용 등 정보는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국민일보가 그동안의 주정심 회의에서 안건별로 제출된 위원들의 의견 주요 내용과 의견 제출 건수 등을 공개해달라고 했지만 국토부는 모두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국토부는 “주정심 회의내용은 부동산 정책 및 제도와 관련된 사항이다.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하고, 정보공개로 인한 부동산 투기, 매점매석으로 국민 주거안정에 불안을 야기할 수 있어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