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스페인 코로나19 확산 방아쇠는 ‘축구’

입력 2020-03-29 17:11 수정 2020-03-29 19:30
스페인 마드리드 외곽의 시립 알무데나 공동묘지에서 28일(현지시간) 코로나19 사망자의 가족과 성직자들이 묘비를 정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사계절 온화한 기후와 다양한 문화 행사들, 바닷가와 카페, 열린 국경…. 유럽엔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퍼질 수 있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유럽 최악의 코로나19 피해를 겪게 된 데에는 유럽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CNN은 지난달 19일 스페인 축구클럽인 발렌시아CF 팬 3000여명이 밀라노로 향했다고 28일(현지시간) 전했다. 발렌시아와 이탈리아 아탈란타BC의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경기장에는 스페인 축구팬들뿐만 아니라 아탈란타를 응원하기 위해 온 4000명 가량의 이탈리아 축구팬들도 있었다. 4000명 중에는 아탈란타의 연고지인 베르가모와 인근 지역에서 온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 베르가모는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많은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기록하고 있는 북부 롬바르디아주의 도시다.

조르지오 고리 베르가모 시장은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에 간 사람도 많지만 그 때 밀라노는 여기저기서 모여 축구 경기를 보는 인파로 가득했다”면서 “그날 저녁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된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CNN에 말했다.

경기 이틀 뒤 베르가모에서 60㎞ 떨어진 코도뇨 지역에서 이탈리아의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전문가 20여명이 만든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당시 이미 확산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첫 확진자가 발생한 그 다음주에 코도뇨 지역에서 매우 빠르게 확진자 수가 늘었고, 인근 지역도 마찬가지였다”고 밝혔다.

밀라노에 갔던 발렌시아의 팬들이 돌아오고 난 며칠 후 스페인 남동부 발렌시아 지역에서도 확진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달 27일 발렌시아 보건당국은 6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3일 뒤에는 발렌시아를 방문했던 포르투갈인 1명이 귀국 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 다음주가 되자 스페인 보건부는 실내에서 실시되는 모든 운동경기를 중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 때만해도 스페인에서는 일상생활이 이뤄지고 있었다. 술집과 카페는 열려있었고, 사람들은 모였다. 스페인 전역에서 여성의 날 마라톤이 열렸던 지난 8일, 마드리드의 거리에만 12만명이 모였다.

이탈리아의 면역학자 프란체스코 레 포체는 “바이러스 확산에 여러 요인들이 있었겠지만 아탈란타와 발렌시아의 경기가 그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당시에는 간과했지만, 그렇게 수많은 관중을 모아 경기를 했다는 건 ‘미친 짓’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라고 전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