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5단 실력자…“종주국 한국에 와서 12년째 식당 운영”

입력 2020-03-27 14:30
구정인 지난 1월 25일 라주(오른쪽 첫 번째) 사장이 ‘해피쿡’에서 자국 손님들이 주문한 음식을 테이블에 놓으면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해 4월 라주(왼쪽 여섯 번째)씨 등 주한네팔인협회 주요 인사들이 강원도 산불 발생 이후 ‘재난구호 및 모범청소년 장학금 기증식’을 갖고 있다. 이날 총 327만7000원의 기금을 기탁했다.

지난해 설날 서울 기독교기념관에서 열린 ‘주한 네팔인의 날’ 행사에서 네팔 주요 인사와 연예인 등이 단상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오른쪽 세 번째가 라주씨.

라주(왼쪽 첫 번째)씨가 2013년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서울시 명예 시민증을 받고 있다.

“태권도를 너무 좋아해서 종주국인 한국에 오게 됐습니다.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도장에 나가 태권도 실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빠른 시일 내 정상화됐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서울 수유리에서 식당 운영 중
네팔인 라주 체트리(47세)씨는 서울 강북구 수유리에서 ‘해피쿡’이라는 상호로 12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메뉴는 주로 인도식이지만 구정과 추석 등 명절에는 네팔 전통음식을 판매하고 있다. ‘해피쿡’은 평소 한국인이 70%를 차지하지만 설과 추석 때는 네팔 전통식만 조리해 판매한다. 식당 메뉴는 ‘난’ ‘캐리’ ‘탄도라 치킨’ 등 인도 음식을 주로 취급한다고 했다. 경기도 파주에서 ‘안나푸르나’라는 상호로 또 다른 식당도 운영 중이다.
한국 내 네팔인은 4만 5000여명으로 공장과 농장 근로자가 대부분이고 유학생, 결혼을 통한 이민자 등도 1000여명을 차지한다. 이들은 ‘주한 네팔인협회’라는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정보를 교환하고 향수도 달래고 있다.
그는 2013년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지난해 4월에는 강원도 산불 발생 이후에 재난 구호 및 청소년을 위한 장학금도 기부했다.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 사랑
그는 네팔 루펜데히 부트월이 고향으로,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로 30분, 승용차로 8시간 걸린다고 했다.
현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경제학 전공) 1학년 수료 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19세 때부터 무역업을 하면서 한국을 수십 차례 방문했다고 했다. 네팔에서는 주로 카펫과 목도리, 겨울용 모자 등을 한국으로 수출했다.
그는 10세 때부터 태권도장을 다니며 실력을 키웠다. 네팔 곳곳에 도장이 있다고도 한다. 그는 현재 태권도 공인 5단의 실력자다. 2005년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태권도 국제대회서 은메달(밴텀급)을 땄고 2008년에는 미국에서 태권도 심판 자격증을 취득했다. 같은 해 수원서 열린 코리아오픈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했고 미국에서 태권도 세계연맹 국제심판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의 자택에도 국기원과 태권도 세계연맹으로부터 받는 상장이 수북히 쌓여있다고 했다. 이 같은 수상 경력으로 그는 한국 주재 네팔 대사와 네팔 총리로부터 상장을 받기로 했다. 네팔과 한국에서 네팔인 대상 태권도 세계(국제)대회 코치도 역임했다. 6단 승단 시험을 치를 생각으로 지금도 틈틈이 도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생활과 향후 계획
라주씨는 이미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한국어에 능숙한 편은 아니지만 일상적 대화에는 문제가 없다. 자녀 2명을 한국에서 낳아 키웠다.
한국 생활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한국 출입국관리사무소 행태에 대해서는 다소 못마땅하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인과 경찰은 착한데 관료들은 다소 불친절한 편”이라며 “네팔이 후진국이라는 편견을 갖고 대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고 전했다.
네팔인이 한국 노동자로 오는 과정은 근로복지공단이 네팔 신문에 모집공고를 내고 한국어 능력 시험을 치른 뒤 공단 직원이 심사한다고 한다. 한국어 시험은 80점을 넘어야 통과된다. 한 번에 1만~2만명을 모아 심사하고 한국 문화와 교육은 개인이 따로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지난주 이 식당에서 만난 네팔인 체트리 마핸드라 코마르(30세)는 “한국 생활에 대체로 만족한다”며 “다만 4년 10개월 일하다 다시 네팔에 돌아가서 비자 경신해서 오는 과정이 불편하다”고 했다. 그는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갈등이 생기거나 업주가 월급 안주고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언어장벽 때문에 벌어지는 일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네팔에서 공부하다 한국으로 건너와 7년째 경기도 이천과 포천에서 농장 근로자로 근무 중이다.
한편 라주씨는 최근 국제e스포츠진흥원 네팔협회장에 선임됐다. 네팔 현지에서 e스포츠 팀을 꾸려 실력을 연마한 뒤 CKEC(한중e스포츠카니발)에 아마추어 대표로 처음으로 출전하기로 했다.
그는 “올해 첫 출전하는 CKEC 친선대회를 통해 한국과 네팔 간의 친목을 더욱 돈독히 하고 양국 간에 상호교류를 다방면으로 확대할 생각”이라며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진정돼 식당 운영도 정상화되고 사업도 확장해 나갔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말했다.

유명렬 기자 mr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