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바이러스 전쟁의 최전선… “나도 죽을까봐 두렵다”

입력 2020-03-26 17:12 수정 2020-03-26 17:21
이탈리아 로마에서 25일(현지시간) 적십자 의료진이 로마 남쪽에 위치한 폰디 지역에 전달할 보급품을 차에 싣고 있다. 각지에 봉쇄령이 내려지면서 식량 등의 물자를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지역이 발생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이번 주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 브레시아에서 슈퍼마켓 직원 마리아그라치아 카사노바(49)가 숨을 거뒀다. 마리아그라치아는 사망하기 나흘 전 동료들에게 목이 아프다고 말했고, 숨을 쉬기가 어렵다고도 했다.

의사는 그녀의 사인을 ‘심장마비’라고 기록했다. 남편에겐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진단 검사는 하지 않았다. 검사가 가능해지기 전에 그녀가 사망했기 때문이다. 마리아그라치아의 죽음은 동료들을 동요시켰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코로나19 위기에도 영업을 계속 해야하는 식료품 가게나 슈퍼마켓의 근로자들이 의료진과는 또다른 ‘전쟁의 최전선’에 있다고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지역을 봉쇄하고 시민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있지만 ‘필수 상점’들은 운영하도록 했다. 시민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식료품이나 의약품은 구매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제일 먼저 고령자들에게 위험했고, 그 다음은 보호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의료진을 공격했다. 그 다음은 필수 상점 근로자들이 되고 있다.

브레시아에서 19㎞ 가량 남쪽으로 가면 레노라는 도시가 나온다. 레노에선 지난 24일까지 6000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지역 슈퍼마켓 직원 데보라 브라보의 출근길은 매일 스트레스와 공포로 가득차 있다. 지난주 데보라는 장갑을 끼지 않은 손님들이 건넨 물건을 받아야 했다. 계산하려고 줄을 서는 손님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간격을 띄워 서있지도 않았다.

지난주 토요일 데보라는 동료 한 명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집중치료실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우리는 의사나 간호사와 마찬가지로 위험에 노출된 개인”이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마리아그라치아와 25년간 동료로 지낸 지역 상점연합회 대표 데니 아솔리니는 “나도 죽을까봐 두렵다”면서 “마리아그라치아에게 일어난 일이 우리 모두에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마리아그라치아의 남편 지안루이지 리카는 “마리아그라치아의 동료들은 모두 영웅이다. 그들은 완전히 노출돼있고 매일매일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르가모에서 집배원으로 일하던 엘리오 마피올리(36)는 얼마 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날 밤 엘리오는 자신과 오래 함께 일해 온 동료들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모두가 집에 있어야 할 때도 우리는 나가야 한다“면서 “감염이 됐다는 사실만 무서운 게 아니었다. 나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공포스러웠다”고 말했다. 지난 2주 동안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우편배달부는 4명이다. 그 중 2명은 베르가모에 있었다.

NYT는 “식료품 가게나 우체국 직원, 배달업 종사자 등 많지 않은 임금을 받으면서 바이러스와 싸우는 ‘숨은 영웅’들에 대해 사람들은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면서 “마리아그라치아의 죽음은 이같은 업종의 사람들에게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