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시절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던 피해자들이 국가배상법의 위헌성을 주장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헌재 재판관들은 피해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입법 정책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남겼다.
헌재는 26일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았던 A씨 등이 과거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의 위헌을 주장하며 제기한 헌법소원을 재판관 5(합헌)대3(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이 조항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무원의 직무 집행 과정에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 그 손해를 배상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A씨 등은 앞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국가배상법상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살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됐었다. A씨 등은 이에 “공무원들에게 위법성의 인식이 있을 것까지를 요구하는 것은 국가배상청구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국가배상청구권의 성립요건으로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규정한 것을 두고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과거 결정을 유지했다. 헌재는 2015년 헌법소원 사건에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이 없는데도 국가배상을 인정할 경우 피해자 구제가 확대되기는 할 것”이라면서도 “현실적으로 원활한 공무수행이 저해될 수 있어 이를 입법정책적으로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헌재는 “과거에 행해진 법 집행행위로 인해 사후에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면 국가의 법 집행행위 자체를 꺼리리는 등 소극적인 행정으로 일관하거나, 행정의 혼란을 초래해 국가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못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며 “공무원의 고의·과실 여부를 떠나 국가가 더욱 폭넓은 배상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면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입법자가 별도의 입법을 통해 구제하면 된다”고 했다.
김기영·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국가배상청구권의 성립요건이 지나치게 불합리해 국민의 국가배상청구를 곤란하게 만들거나 불가능하게 하면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라며 반대의견을 냈지만 소수에 머물렀다.
허경구 기자 ni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