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를 뚫고 신작 10여편이 연달아 개봉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본래 책정된 홍보 비용을 소진한 작은 규모의 작품들이나, 마니아층을 믿고 개봉하는 장르물이 대부분이다. 일일 극장 관객이 2만명대로 추락한 극장에 출사표를 던진 이 용감한 ‘다윗’들이 영화계 숨통을 틔울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신작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개봉 전 실시간 예매율 1위를 달렸던 ‘주디’(25일 개봉)다. 아카데미 등 권위의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휩쓴 배우 르네 젤위거의 열연이 백미다. 그는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 역으로 잘 알려진 할리우드 배우 주디 갈랜드의 화려했던 생애와 이면을 세밀한 연기로 풀어낸다. 지난 12일로 예정된 개봉을 한차례 연기했던 주디는 팬들의 기대에 힘입어 개봉을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한국 영화 2편도 25일부터 관객을 만나고 있다. 정승오 감독 첫 장편 데뷔작 ‘이장’은 한국 사회에 뿌리박힌 가부장제를 풍자와 해학으로 파고든다. 아버지 묘 이장을 위해 모인 다섯 남매의 얘기가 담기는데, 싱글맘 장녀와 철없는 막내아들 등 인물을 배치해 차별의 실상을 생생히 드러낸다. 반면 ‘사랑하고 있습니까’는 낡은 로맨스로 눈총을 받고 있다. MBC 예능 ‘나 혼자 산다’ 성훈과 배우 김소은, 영화 ‘동감’(2000)을 연출한 김정권 감독이 합심해 기대를 모았으나, 스토리가 역부족이다. 카페 사장의 관심은 사랑이라기엔 폭력적이고, 로맨스 상대인 파티셰는 순정만화 속 민폐 여성 캐릭터의 클리셰를 되풀이한다.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도 준비돼 있다. 영화 ‘페인티드 버드’(26일)는 유대인 소년이 바라본 2차 세계대전의 실상을 집요하게 파고든 화제작인 동시에 문제작이다. 수작이나, 살인과 강간 등 가학적 장면이 여과 없이 담긴다. 잔혹한 묘사에 베네치아국제영화제 때는 영화를 보던 관객 여럿이 퇴장했으며, 영화 기획·제작에 11년이 걸렸다. 같은 날 선보이는 ‘그 누구도 아닌’은 남성성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인의 삶을 플래시백을 통해 4개 토막으로 보여주는데,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아델 하에넬 등 4명의 배우가 각기 다른 시간대를 연기한다.
다른 한편에선 호러물 개봉이 이어지고 있다. 마니아 위주 장르인 호러는 코로나19 여파에 휘둘릴 가능성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명장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스케어리 스토리: 어둠의 속삭임’(25일)은 제작비 2500만 달러의 대작이다. 국제 수익 1억 달러를 넘어선 작품으로, 폐가에서 발견한 책을 펼치며 벌어지는 끔찍한 일을 그린다. 26일에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으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의 ‘온다’가 선보인다. 강렬한 시퀀스에 얹어진 오컬트 요소가 관객을 ‘악(惡)’에 대한 근원적 공포로 끌고 들어간다. 이밖에도 아름다운 영상미로 국내외에서 마니아를 모은 애니메이션 ‘바이올렛 에버가든-영원과 자동 수기 인형’과 일본 대배우 키키 키린의 유작 ‘모리의 정원’, ‘첫키스만 50번째’, ‘퀸 오브 아이스’ 등도 26일 나란히 개봉해 차갑게 식은 극장에 열기를 불어넣는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