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수장들은 요즘 긴박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여파로 실물경제와 금융에 ‘경고등’이 켜진 탓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피해에 따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 살리기에 사활을 걸다시피하면서 금융 당국은 부담은 클 수 밖에 없다. 지원 대책 규모가 100조 원대까지 늘어나자 금융 당국 수장들은 은행권의 협조 요청에 정성을 쏟고 있다. 대규모 지원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원활한 ‘총알’(자금) 공급과 함께 ‘속도전’(신속한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25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은행과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10조 7000억원 규모의 증권시장안정펀드가 조성될 전망이다. 신한·KB금융·하나·우리·NH농협금융 등 5대 금융지주가 1조원씩 부담하고 기타 업권에서 나머지를 분담하는 방안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로서는 증권시장안정펀드 기금 조성이 다소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채권과 달리 주식의 경우, 위험도가 높은 자산이라 주식 투자에 따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금융위는 “증권시장안정펀드에 출자한 금융회사들의 건전성 비율 완화 수준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은행들의 걱정을 덜어주겠다는 것이다.
금융회사들은 1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 출자해야 한다. 채권안정펀드는 시장에서 소화가 어려운 신용등급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사주는 역할을 한다. 출자 비율은 금융회사의 자산규모가 반영돼 조정될 예정이다. 채권안정펀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10조 원 규모가 조성됐다. 당시 산업은행이 2조원, 나머지 주요 은행들이 6조원 등 은행권에서 8조원을 출자했다. 보험사와 증권사는 각각 1조 5000억원, 5000억원을 부담했다.
이밖에 은행을 중심으로 한 정책금융 기관들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 등을 대상으로 한 저리 대출 업무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는 이들에게 적시에 자금이 공급되어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다음달부터 예정된 대출 만기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조치도 차질없이 시행되어야 한다.
금융 당국 수장들이 은행에 공을 들이는 건 이 때문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이달에만 총 5차례에 걸쳐 은행장을 비롯한 금융권 인사들을 만나 협조를 당부했다. 나흘에 한번 꼴로 은행 수장들을 만난 셈이다.
이날 오후에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금융투자업계 단체장을 비롯해 제2금융권 업계 수장들을 만나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사업자 등을 위한 신속한 지원을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금융위와 금감원,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 등 전 금융협회는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금융지원 협약’을 체결했다.
일각에서는 채권·증권시장 안정펀드가 은행업계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은 위원장은 “은행권에 부담인 것은 맞다. 하지만 은행이 수혜자이기도 하다. 다같이 협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채권·증권시장 안정펀드가 없을 경우, 개별 은행이 직접 대출을 담당해야 한다. 하지만 펀드를 통해 부담을 나눠지면서 개별은행의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