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잃은 초등학생에게 수천만원 소송…한화손보 공식 사과

입력 2020-03-25 16:37
게티이미지뱅크

한화손해보험(이하 한화손보)이 고아가 된 초등학생에게 수천만원 규모의 구상권(求像權·채무를 대신 변제해 준 사람이 채권자를 대신하여 채무당사자에게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 소송을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화손보 측은 논란이 커지자 소송을 취하하고 공식 사과했다.

한문철 변호사의 유튜브 채널 한문철TV 23일 방송에 따르면 초등학생 A군(13)은 6년 전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를 오토바이 사고로 잃었다. A군은 아버지의 사망보험금 1억5000만원 중 6000만원을 받았고 나머지 9000만원은 A군의 어머니에게 지급될 예정이었으나 베트남인인 어머니가 사고 전 이미 베트남으로 돌아가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6년째 한화손보가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한화손보가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A군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왔다. A군의 아버지와 상대방 승용차 운전자의 교통사고 과실 비율이 50대50으로 책정됐으니 사망한 아버지 대신 상속자인 A군이 돈을 일부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한화손보는 2014년 사고 당시 상대방 승용차 동승자의 치료비 및 합의금 5300여만원 중 2700여만원을 A군에게 요구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지난 12일 A군에게 ‘한화손보가 요구한 금액을 갚고 못 갚을 시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이자를 지급하라’는 이행권고결정을 내렸다. 10년에 한 번씩 재판을 열어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는 것을 고려하면 한화손보는 A군을 상대로 평생 추심(推尋·대금의 지급을 요청하는 것)이 가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이와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24일 ‘고아가 된 초등학생에게 소송을 건 보험회사가 어딘지 밝히고 이 아이에 대한 구제책을 고민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사망보험금을 지급할 때는 어머니와 아이에게 60대40의 비율로 지급했으면서 구상권 청구는 고아가 된 A군에게만 100% 비율로 청구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보험사는 A군의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9000만원이 지급될 일이 없을 것이란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 ‘어머니가 와야 준다’며 그 돈을 쥔 채 보육원에 있는 초등학생에게 소송을 걸었다”고 분노했다.

이어 “국민은 소비자로서 자본 증식에만 혈안이 된 보험사가 어디인지 알 권리가 있다”며 “자본주의 국가라고 자본이 사람보다 우선되는 법은 없다”고 강조했다.

해당 청원 내용이 퍼지면서 여론은 해당 보험사 불매운동까지 벌여야 한다며 공분했다. 네티즌들은 “내가 들어놓은 보험 때문에 내 자식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거 아니냐” “살려고 가입한 보험이 사지로 내모는 격”이라며 “당장 해지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25일 현재 해당 청원은 16만이 넘는 서명을 받았다.

한화손해보험 홈페이지 캡처

해당 보험사가 한화손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거센 질타를 받자 한화손보 측은 24일 “법적인 소멸시효 문제가 있어 소를 제기한 것이며 유가족 대표와 자녀(A군)의 상속 비율(40%) 범위 내 금액에서 일부 하향 조정된 금액으로 화해하기로 합의하고 소는 취하하기로 했다”고 한 차례 해명했다.

그러나 한 변호사가 A군 측에 “소송을 도와줄 테니 합의하지 마라”고 말려 합의가 불발된 사실이 알려졌다.

여론이 점차 악화하자 결국 한화손보는 25일 공식 사과문을 내고 “최근 국민청원에 올라온 초등학생에 대한 소송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과 당사 계약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고개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강성수 한화손보 대표는 “소송에 앞서 소송 당사자의 가정과 경제적 상황을 미리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고 법적 보호자 등을 찾는 노력이 부족했다”며 “회사는 소송을 취하했으며 앞으로 미성년 자녀를 상대로 한 구상금 청구를 하지 않을 것”라고 전했다.

이화랑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