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 ‘박사방’을 운영하며 여성 수십명을 협박해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유포했던 조주빈(25)씨는 경찰에 체포되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엔 ‘봉사에 관심 많은 평범한 청년’이었다. 조씨 주변 그 누구도 그가 극악무도한 성착취범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1995년생인 조씨는 인천의 한 전문대학에서 정보통신 분야를 전공했다. 2018년 2월 졸업한 그의 대학 성적은 4학기 평균 평점 4.17으로 매우 우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학보사 기자와 편집국장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학내 성폭력 예방 관련 기사를 쓰기도 했다. 또 졸업 후에는 인천의 한 봉사단체에서 활동하며 수십 차례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는 검거 나흘 전까지도 봉사단체를 찾았다고 한다. 조씨의 이런 ‘평범한 일상’은 미성년자들을 협박해 가학적 성착취물을 촬영토록 한 그의 범죄 행위와 크게 대비된다.
경찰은 조씨가 2018년 12월부터 온라인상에서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졸업 후 무직으로 지내던 그는 2018년 말 인터넷에서 마약이나 총기를 판다고 돈을 받은 후 물건은 보내지 않는 방식으로 사기 행각을 벌였다. 하지만 이를 통해 큰 수익을 얻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조씨는 급전이 필요한 여성을 ‘고액 아르바이트’로 유인해 나체사진을 받고, 이를 빌미로 이들을 성적 노예로 부리며 금전적 이익을 올리던 ‘갓갓’이라는 인물을 알게 됐다.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갓갓’은 텔레그램에서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해 금전적 이익을 올리는 범죄방식을 처음으로 만든 인물이다.
조씨는 경찰 조사에서 “한 번 해보니 돈이 돼 (사기에서 성착취물 제작·유포로) 방법을 바꾸게 됐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침 ‘갓갓’이 지난해 2월 잠적했고 그로부터 n번방을 물려받은 ‘와치맨’도 9월쯤 갑자기 사라지자 조씨는 텔레그램 성착취물 시장을 독식했다. 그가 만든 ‘박사방’에는 한때 최대 1만명이 동시에 가입해 성착취물을 공유했고, 이들은 이제 경찰의 수사대상이 됐다.
이달 초까지도 ‘박사 활동’과 ‘봉사 활동’을 병행하던 조씨는 결국 지난 16일 검거돼 19일 구속됐다. 하지만 그가 만든 성착취물은 지금도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4일 신상공개위원회를 열고 조씨에 대한 신상정보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조씨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5조에 근거해 신상이 공개된 첫 사례다.
위원회는 “피의자는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노예로 지칭하며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포하는 등 범행수법이 악질적·반복적이고, 아동·청소년을 포함해 피해자가 무려 70여명에 이르는 등 범죄가 중대하다”며 “국민의 알권리와 동종범죄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차원에서 피의자의 성명과 나이, 얼굴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