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역설…대도시 공기질 크게 개선

입력 2020-03-24 15:19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지만 한편에선 시민 건강을 위협하던 대기오염이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가 크게 유행하는 대도시와 산업도시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졌다. 다수의 석탄화력발전소 단지와 인접국가 중국에 시달리던 한국의 대기질도 작년에 비해 확연히 개선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의 2019년과 2020년 대기 중 질소화합물 농도를 비교한 위성사진. 가디언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데이터분석업체에 의뢰해 위성 사진을 비교해본 결과, 로스앤젤레스(LA), 시애틀, 뉴욕, 시카고, 애틀랜타 등 대도시권에서 자동차와 트럭이 배출하는 이산화질소량이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무실, 학교, 식당 등이 문을 닫으면서 거리에 나선 차량 숫자가 크게 줄어든 것과 연관있다는 분석이다.

뉴욕시의 대기 질 분석을 진행해온 컬럼비아대학 연구진들은 일산화탄소 배출량이 평소보다 50% 감소했다고 전했다.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뉴욕의 대기질이 크게 개선됐다. 뉴욕타임즈

유럽과 중국도 공기가 맑아졌다.

유럽우주기구(ESA)의 센티널-5P 위성의 측정에 따르면 유럽과 아시아 산업단지가 일시적으로 가동을 멈추면서 이산화질소 농도가 최근 6주간 격감, 전년 동기보다 훨씬 낮아졌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중국 대기질이 크게 개선됐다. 가디언

이산화질소(NO2)는 발전소와 공장, 배기가스에서 유래하는 대기오염 물질로 천식 등 호흡기질환을 악화시킨다. 코로나19 발원지인 우한 등 중국 중앙 동부 산업지역의 대기질 개선도 두드러지는데,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이 일대 일산화질소 농도가 10∼30%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유럽의 우한’이라 불릴만큼 타격이 큰 북부 이탈리아는 이산화질소 농도가 무려 40%나 격감하는 유례 없는 현상이 벌어졌다.

북부 이탈리아의 대기질이 크게 개선됐다. 가디언

한국에서도 중국 유래 오염물질 감소와 석탄화력발전소 단지 가동중단 등 내부적 요인으로 이산화질소 농도가 감소했다.

인과관계가 직접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지만 대도시·산업지역 대기질 개선의 주원인은 광범위한 외출자제령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했다.

미국을 보면 교통 체증으로 악명이 높은 로스앤젤레스(LA)를 비롯해 뉴욕과 시카고, 시애틀, 애틀랜타 등 대도시권에서 교통량이 일제히 줄면서 대기오염 물질 배출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즈는 “코로나19로 LA의 사업체들과 학교가 문을 닫고, 운전자들도 도로로 나오지 않으면서 LA 출퇴근 시간대의 교통 체증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교통정보 분석업체 인릭스에 따르면 지난 18일(수요일) 오전 8시 기준 LA 110번 고속도로의 차량 운행 속도는 지난 1∼2월 같은 요일의 평균 속도보다 53% 빨라졌으며, 퇴근 차량으로 꽉 막히는 오후 5시의 차량 속도도 71% 높아졌다고 뉴욕타임즈가 밝혔다.

뉴욕시도 사무실과 학교가 문을 닫고, 식당이 영업을 중단하면서 지난 18일 출퇴근 시간 차량 운행 속도는 평소와 비교해 36% 빨라졌다고 인릭스는 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교통체증 해소 및 대기 질 개선은 ‘반짝’ 효과에 그칠 전망이며,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와 실업 증가 등 부정적인 효과를 차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뉴욕타임즈는 덧붙였다. 가디언은 코로나19로 의도치 않게 전지구적 ‘저탄소 경제’ 실험이 전개되고 있다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았다.

영국 정부의 과학자문위원회의 전 의장 출신인 몰 몽크스 교수(대기오염학)는 “(코로나19로 인해) 인류는 반강제적으로 초대형 사회실험에 참여하게 됐다”며 “미래에 저탄소 경제를 실현하면서 겪게 될 일들을 미리 체험하는 것 아닐까?”라고 자문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안타까운 죽음들을 상쇄할 만큼은 아니지만, 유행 이후로 대기질이 개선된 덕분에 농작물 생장이 촉진되고, 천식 등 질환자와 면역력이 약한 사람 등 취약계층들은 건강관리에 유리해진 면도 있다는 설명이다.

몽크스 교수는 “인명손실을 가벼이 여기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어쩌면 희망을 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