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서도 위치추적·가택연금…‘코로나 빅브라더’ 공포 성큼

입력 2020-03-24 14:30
2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경찰이 총기를 들고 서 있다. EPA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확산에 전통적으로 자유를 중시해온 유럽 각국이 공권력으로 위치 추적·강제 구금을 허용하는 극약처방을 내놓고 있다. 정보보호 단체를 중심으로 전체주의적 감시체제인 빅브라더 사회가 출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이날 영국 의회는 보리스 존슨 행정부가 상정한 비상법안인 ‘코로나바이러스 법’을 통과시켰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에 시민을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게 골자다. 하원은 이 법을 상원으로 곧장 이관해 이르면 이번 주중 정식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법안이 발효되면 정부는 공항과 항구를 폐쇄할 수 있고, 코로나19 전염 위험이 있는 시민을 구금·격리할 수 있다. 또 집회를 해산하고, 정부 조치에 저항하는 이들에게는 벌금도 부과된다. 이러한 권한은 하원 승인을 받으면 6개월마다 갱신된다.
2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펠탑 인근 거리에서 경찰관이 한 남성을 검문검색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프랑스 의회도 지난 22일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보건 비상사태 선포 안건을 통과시켰다. 코로나19 확산을 저지한다는 명목에서다. 앞으로 프랑스 수사당국은 법원 영장 없이도 사회에 위협을 줄 수 있다고 의심되는 이에 대한 가택 수색, 가택 연금 등을 할 수 있고, 정부는 국내 치안 유지에 군 병력을 동원할 수 있다. 비상사태는 선포 이후 두 달간 지속되며 갱신할 수 있다.

특히 AP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스마트폰 실시간 위치 데이터를 활용해 코로나19 확진자의 경로를 추적하고, 접촉한 주민의 신원을 파악한다는 방침이다. 유럽연합(EU) 데이터 보호당국도 코로나19 대유행 단계에서 개인정보 보안 강화 정책을 일시적인 휴지기 상태에 두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당장 유럽의 정보 보호 단체들은 들고 일어섰다. 한 영국 단체의 회원은 3개국 보건담당 부처 앞으로 공개서한을 보내 “감시 시스템은 인권을 침해할 뿐 아니라 제대로 작동된다는 보장도 없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된 뒤에도 전체주의적 감시체제가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는 지난 20일 국제 정세 전문가들을 인용해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를 영원히 바꿔놓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존 사회·경제 시스템을 뒤흔드는 이번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극단 처방들이 ‘뉴 노멀(New Normal·새 시대의 표준)’로 자리 잡으면서 전체주의적 권력의 공고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세계적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히브리대 교수도 최근 중국·이스라엘 등이 생체정보까지 활용해 밀착감시 체계를 가동한 현실을 거론하며 “전염병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 하에 정부의 감시 체계가 강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통 때는 몇 년의 숙고가 필요한 미성숙하고 위험한 기술들이 위기상황에는 손쉽게 합법성을 부여받는다”며 “중앙집중식 감시와 가혹한 처벌만이 정부 지침을 따르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고도 강조했다. 빅브라더 사회의 출현을 경고한 셈이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