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박사방’ 사건 주범인 조주빈(25)의 얼굴과 함께 그의 이중생활이 조명되고 있다.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촬영하고 공유하던 그 순간에도 그는 보육원에 있었다. 아동·청소년·장애인을 상대로 꽤 오랜기간,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쳐왔다.
조주빈은 수도권의 한 전문대에서 정보 관련 학과를 전공했다. 졸업 직후인 2018년부터 텔래그램 세계에 발을 들였다. 총기와 마약 등을 판매한다는 허위광고를 올린 뒤 돈을 가로채는 사기행각이 시작이었다. 그러다 같은 해 12월부터 ‘박사방’을 운영했다. 바로 그곳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상대로 한 성착취물을 만들고 뿌렸다.
조주빈은 ‘박사’로 살던 기간동안 지역 내 봉사단체를 주기적으로 찾았다. 지난해까지 부팀장으로 행사를 직접 기획하거나 참여했고, 최근에는 장애인지원팀장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주빈의 신상 일부가 공개된 뒤 각종 SNS와 온라인커뮤니티에는 그가 봉사활동 중 남긴 기념사진이 대거 등장했다. 해당 보육원 홈페이지 곳곳에 아직 조주빈의 흔적이 남아있던 탓인데, 현재는 서버 폭주로 사이트가 차단된 상태다.
그가 활동했던 인천 한 비정부기구(NGO) 봉사단체에 따르면 조주빈이 처음 이곳을 찾은 건 군 전역 직후인 2017년이다. 군대 동기인 친구와 함께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고서였다. 이듬해 3월까지 성실한 활동이 이어졌다. 한달에 한번씩 장애인 시설과 미혼모 시설 등을 방문하기도 했다.
무슨일 때문인지 그해 3월부터는 그의 발길이 끓겼다. 그러다 조주빈이 다시 봉사 현장을 찾은 건 1년 만인 지난해 3월이었다. ‘박사방’ 운영을 시작한지 넉달째 되는 시점이었다. 단체 관계자는 이때 조주빈의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변해있었다고 했다.
사회복지자원봉사인증관리 사이트에 등록된 조주빈의 기록을 보면 2017년부터 검거 전까지 총 57차례 자원봉사를 한 것으로 나와있다. 그중 온라인상에 공개된 활동은 지난해 11월부터인데, 단체 사람들과 함께 자원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아동청소년시설과 지적장애인시설을 찾아 봉사한 기록이 남아있다.
또 같은 달 지역 보육원 관계자와 아동들이 함께 모여 진행한 운동회에도 참석했다. 그가 이 행사 후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도 재조명되고 있다. 조주빈은 당시 “여러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 나 역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다 군 전역 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며 “보육원 아이들과 더불어 운동회에 참여하니 내내 친근하면서도 새로웠다”고 말했다. 이어 “웃고 떠들고 부대끼다보니 어느새 봉사자와 수혜자의 관계가 아닌 형과 동생, 오빠와 동생이 돼 편안히 즐길 수 있었다”고도 했다.
봉사단체 사람들에게 조주빈은 그저 조용하고 차분한 청년이었다. 성실하게 꾸준히 활동하는 봉사자에게 주어지는 ‘팀장’ 같은 자리를 조주빈도 담당하고 있었다.
조주빈은 지난 16일 경찰에 붙잡히기 불과 며칠 전까지 봉사단체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해당 단체 홈페이지에는 지난달 27일 ‘2020.02.01 장애지원팀 조주빈 팀장 방문’이라는 제목의 글과 사진이 게시돼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조주빈이 마지막으로 단체를 찾은 날은 지난 12일이다.
조주빈이 아동들과 한 데 모여 웃고 떠드는 사진, 동료 봉사자들과 기념으로 남긴 사진 등이 대거 등장하자 일각에서는 “조주빈이 보육원 아이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자주 얼굴을 봤던 보육원 아동·청소년·장애인과 동료 봉사자들이 범죄 노출됐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다. 해당 단체 측은 조주빈의 범행사실을 인지한 지난 21일 혹시 모를 추가 범행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 경찰 조사를 의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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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