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내리고 속옷 벗고’…성적 수치심 없다면 무죄

입력 2020-03-24 08:52

‘속옷 벗고 특정 부위 노출했는데...’

길거리와 공원에서 나체로 잇따라 특정부위를 만지는 등 음란 행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남자가 이례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남자의 행위로 성적 수치심을 느낀 주변 사람이 없었고 성행위를 연상케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광주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노재호)는 공연음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51)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24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8월16일 오후 4시쯤 광주 동구 한 길거리에서 불특정 다수가 있는데도 바지와 속옷을 벗고 자신의 특정 부위를 만지는 등 음란 행위를 한 혐의다.

또 같은 달 19일 오전 10시30분쯤 광주 동구 한 공원에서 옷을 모두 벗고 손으로 자신의 특정 부위를 만지는 행위를 한 혐의도 받았다.

하지만 A씨는 재판 과정에서 ‘날씨가 매우 더워 입고 있던 옷이 땀에 젖자 이를 말리려 한 것이다. 음란한 행위를 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A씨가 두 차례에 걸쳐 특정 부위를 고의로 노출하고 만지는 등 성적 행위를 한 것이 공연음란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A씨를 재판에 넘겼다.

그렇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A씨가 바지 속에 손을 넣거나 혹은 특정 부위를 꺼낸 상태에서 만지작거리는 것 이외에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움직임이나 이른바 자위행위로 생각할 수 있는 거동을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A씨의 행위들을 경찰에 신고한 목격자들의 진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의 수사보고서 등을 살펴봐도 성행위 내지 자위행위가 연상될 수 있는 행동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A씨가 성적인 대상으로 삼았을 만한 사람 혹은 그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사물이 A씨 주변에 있었다거나, A씨가 성적 대상으로 삼을 무언가를 의식하면서 이 같은 행위들을 했다고 입증할 자료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의 8월16일의 행위에 대해 “A씨의 노출 상태를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보통의 남성들로서, 그들이 A씨의 노출 상태나 그에 따른 행위로부터 성욕을 자극받거나 성적 수치심을 느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 “같은 달 19일 종교 홍보 활동을 하던 여성 2명이 A씨의 모습을 보게 됐다는 취지의 경찰 수사보고서가 있지만 이들이 A씨로부터 불쾌감을 넘어서는 어떤 자극이나 느낌을 받은 것인지 알 수 있는 자료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A씨의 진술이 일부 합리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자위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A씨의 행위에 음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A씨가 앞서 공연음란죄로 처벌받은 사실, 조현병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형사 범죄를 저질러 처벌받은 점 등을 들어 검찰이 청구한 치료감호도 기각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