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무제한 ‘달러 찍어내기’
기축통화국 ‘달러 발권력’ 총동원
연준, 국채·주택저당증권(MBS) 매입 결정
회사채 매입·가계 지원 대책도 내놓아
금융·기업 붕괴, ‘대량 해고’로 가계경제 파탄 위기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3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사실상 ‘무제한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를 꺼내들었다.
무제한적인 ‘달러 찍어내기’로 코로나19로부터 촉발된 유례없는 경제위기에 대처하겠다는 의도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연준의 메시지는 돈 찍는 기계는 예열됐으며 준비가 끝났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NYT는 이어 “연준이 내놓은 비상조치는 두 문장으로 압축된다”면서 “경제 전반에 걸친 달러 부족 사태에 대처하고, 이 달러 부족 사태를 끝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벤 버냉키 연준 의장처럼 제롬 파월 의장도 ‘달러 찍어내기’에 들어간 것이다. 연준은 기축통화국 중앙은행이 지닌 ‘달러 발권력’을 총동원하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연준은 특히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회사채 시장도 투자등급에 한해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쓰지 않았던 카드다. 연준은 가계 지원 대책도 내놓았다.
연준은 이날 성명을 통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진 코로나바이러스는 미국과 세계에 엄청난 어려움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우리의 경제는 극심한 혼란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이어 “도전적인 시기의 미국 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모든 범위의 도구를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준은 그러면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시장기능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만큼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채와 MBS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완화(QE) 정책을 한도 없이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연준은 지난 15일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양적완화를 결정한 지 8일 만에 파격적인 카드를 추가로 내놓은 셈이다.
이번 주에는 국채 3750억 달러(477조원), MBS 2500억 달러(318조원)를 매입한다. 이번 결정은 FOMC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연준은 또 3개 비상기구를 신설해 기업과 가계를 지원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3000억 달러(381조원) 한도로, 재무부가 환율안정기금(ESF)을 통해 300억 달러를 제공한다.
우선 회사채 시장과 관련해 ‘프라이머리 마켓 기업 신용 기구’(PMCCF)와 ‘세컨더리 마켓 기업 신용 기구’(SMCCF)가 설치된다. 프라이머리 마켓은 발행시장, 세컨더리 마켓은 유통시장을 각각 의미한다.
연준은 발행시장에서 4년 한도로 브릿지론을 제공하며, 유통시장 개입은 투자등급 우량 회사채 및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회사채 시장은 약 9조 5000억 달러(1경 2010조) 규모다. 이 중 절반가량인 투자등급 시장의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취지다.
2008년 가동됐던 ‘자산담보부증권 대출 기구(TALF)’도 다시 설치된다. TALF는 신용도가 높은 개인 소비자들을 지원하는 기구다. TALF는 학자금 대출·자동차 대출·신용카드 대출·중소기업청(SBA) 보증부대출 등을 자산으로 발행된 유동화증권(ABS)을 사들이게 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은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 빠르게, 더 폭넓게 움직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준이 한국을 포함해 외국 중앙은행과의 통화스와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글로벌 달러 시장의 유동성을 풍부하게 유지하겠다는 취지다.
연준이 무제한 ‘달러 찍어내기’를 포함한 비상 처방을 꺼내든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금융시장·기업에 이어 가계경제까지 무너뜨리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연준은 특히 기업들이 대량 해고에 나서면서 가계 경제가 붕괴충격파가 가계 부문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연준이 투자등급으로 제한하기는 했지만 회사채 시장에 개입하고 개인 소비자금융을 지원하는 TALF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연준은 중소기업 대출을 지원하기 위한 ‘메인스트리트 비즈니스 대출 프로그램’도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연준을 비롯한 금융규제 당국들도 22일 공동성명을 내고 코로나19 사태로 영향을 받은 차입자들을 건설적으로 처리해달라고 각 금융기관에 주문하기도 했다. 특히 신용리스크가 있는 대출에 대해 무조건 채무구조조정(TDR)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