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줄무늬 티셔츠 그대로 누워계시데예. 마지막 얼굴도 안 보여준다 카는걸 떼를 써가 유리문 밖에서 3초인가 봤어예. 그 모습을 못 잊을 것 같아예.”
이모(53·여)씨는 지난 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망한 어머니(80)의 시신을 3초 정도 봤다. 그날 대구 동산병원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이미 관 안에 있었다. 병원에서는 감염이 우려되니 친딸이라도 시신을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병원 직원에게 사정을 하고 유리문 너머에서 기다렸다. 직원은 두 겹으로 밀봉된 시신을 어깨까지만 보여줬다. 목 아래 노란색 줄무늬 티셔츠가 보였다. 어머니가 평소 입던 옷이었다. 장염인 줄 알고 이씨의 큰 언니가 사다 준 죽을 받아먹다 쓰러졌을 때 옷차림 그대로였다.
코로나19로 사망한 시신에는 수의를 입히는 과정이 생략된다. 이씨 어머니처럼 갑자기 쓰러져 사망한 경우 마지막 순간 입었던 옷이 수의가 된다. 확진 판정을 받고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 사망하면 환자복을 입은 채 ‘누출 방지 비닐백’에 밀봉된다. 지난 18일 대구 경북대학교 병원에서 사망한 박모(65)씨의 아내 임모(60)씨는 환자복을 입고 입관한 남편의 모습이 계속 생각난다고 했다. “빼싹 말랐대. 머리는 산발돼가 있고예. 머리라도 정리해주지… 귀신을 만들어놨대.” 전화기 너머 임씨가 오열했다.
꽃 한 송이 못 바친 이별
코로나19 사망자의 가족들은 대부분 장례 절차 없이 고인을 떠나보낸다. 국민일보가 만나거나 전화 통화한 사망자 6명의 가족 가운데 빈소를 마련한 경우는 한 가족뿐이었다.
지난 9일 대구에서 숨진 이모(62)씨는 다음 날 곧바로 화장됐고 장례식 없이 경북 칠곡의 한 추모공원에 안치됐다. 그는 집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2시간 만에 사망했고 사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의 아들(40)은 “장례는 코로나가 종식되고 나서 추모제 형식으로 하든지 생각해보려 한다”며 “지금은 삼일장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나. 아버님도 이해해주실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어머니를 잃은 성모(60·여)씨는 다른 가족들이 코로나19 확진을 받거나 격리되면서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성씨의 동생은 확진 판정을 받고 영남대병원에 입원 중이다. 오빠도 어머니 사망 직후 자가격리됐다가 음성 판정을 받았다. 성씨는 “가족들 누구도 어머니의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고 어머니 당신도 돌아가실 거라고 생각을 못 했을 것”이라면서 “세상이 좀 조용해지면 장례를 치르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대구의 시립 화장장인 명복공원에서 만난 유모(48·여)씨는 코로나19로 사망한 시어머니(77)의 유골함을 들고 경남 창녕 선산에 간다고 했다. 유씨는 “빈소는 따로 차리지 않기로 했다. 시국이 이래서 오라고 해도 올 사람도 없을 것 같다. 나중에 사태가 잠잠해지면 선산에서 친척분들만 모여 간단히 장례를 치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망자의 유족들은 대부분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한다. 가족과 떨어져 격리 병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숨지기 때문이다. 유언을 들었다거나 손을 잡아봤다는 유족은 찾기 어렵다.
서모(37·여)씨는 지난달 13일 병원에 입원했던 아버지(66)를 한달여만인 지난 16일 영정으로 만났다. 아버지는 식욕이 떨어져 식도암 재발을 걱정해 입원했다가 호흡기 증상자 전수조사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위독하다는 연락에 사망 전날 대구의료원으로 달려갔지만 가족 한 명만 방호복을 입고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의 둘째 형이 혼자 임종을 지켰다.
서씨의 가족들은 주위에 알리지 않고 빈소를 차렸다. 빈소는 장례식 내내 텅 비어 있었다. “저희가 임종도 못 지켰잖아요. 그래서 빈소를 차렸어요. 소식을 알리지 않고 친척들도 못 오게 했어요. 그냥 아버지한테 식사도 올리고 인사를 하려고요.” 사위를 먼저 보낸 서씨의 외할머니는 빈소에 오지 못하고 매일 전화해 “어떻게 이렇게 가노”라며 울었다.
서씨는 갑작스러운 이별이 아쉽기만 하다. “1월에 아빠가 갈비찜을 먹고 싶다고 했는데 바빠서 못 해 드린 게 너무 후회돼요. 당연히 시간이 있을 줄 알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오래 사세요’ ‘빨리 나으세요’ 이런 말도 할 걸 그랬어요.”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는 서씨의 남동생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한국에 오지 못했다. 중국의 입국제한 조치로 대구에 왔다가 중국으로 돌아가면 지정 시설에서 한동안 격리되기 때문이다. 서씨는 “동생이 전화로 계속 미안하다고만 한다”고 말했다.
애도하지 못하고 위로도 못 받아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 정신건강 최고 위험군은 감염병 사망자의 유가족이라고 지적한다. 장례를 치르지 못하면서 애도하지 못 하고 위로도 못 받아 마음의 고통이 극에 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은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이어 현 코로나19 사태에서 사망자 유가족의 심리 상담을 맡고 있다. 그는 “유가족 입장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아니었다면 고령이었어도 잃지 않았을 가족이었다”며 “고인의 죽음이 억울하게 느껴지고 받아들이기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가족 역시 확진자가 돼 격리되면 ‘고인을 잘 보내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커질 수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지금 유가족에게 필요한 건 공감해주고 그들을 지지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재난정신건강위원장인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감염병으로 가족이 사망하면 애도의 과정이 방해를 받는다. 이들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은 가족들의 건강도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심 부장은 “‘가족을 잃었는데 어떻게 내 걱정을 하나’라는 유가족들이 많은데 본인의 건강에 대한 공포를 인정해야 한다”며 “자연스러운 심리적 반응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인정하고 자신을 돌보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일부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턱없이 부족했던 병상, 사후 확진 판정 등 정부의 미흡한 대처가 고인을 죽음으로 이끌었다고 보고 있다. 지난 2일 어머니를 잃은 딸 이씨는 대구에서 꾸려진 ‘코로나19 소송단’에 참가했다. 다른 유족들도 “억울하다”며 동참 의지를 밝히고 있다. 소송단을 모집 중인 도태우 변호사는 “메르스 사태 당시 사망자 유족이 낸 소송의 판결을 참고해 법리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망자 4명 중 1명 만 하루도 치료 못 받아
국민일보가 23일 0시 기준 코로나19 사망자 111명을 분석한 결과 사망자의 34.3%(38명)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이나 치매 등 정신질환 외에 다른 질환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 당국은 대부분 사망자가 기저질환을 갖고 있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이를 자세히 뜯어보면 비교적 가벼운 질환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단순하게 기저질환 유무로 사망자를 분류하면 기저질환이 있었던 경우가 92.8%(103명), 없었던 경우가 7.2%(8명)이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자료에 각 시·도별 발표 자료를 더해 분석한 것이라 방대본 분석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코로나19 확진에서 사망까지 걸린 기간을 분석했을 때는 사망 전 확진이 86.5%(96명), 사후 확진이 13.5%(15명)였다. 사망 전 확진 가운데는 ‘확진 다음 날 사망’이 7.2%(8명), ‘확진 받고 당일 사망’이 3.6%(4명)였다. 사후 확진과 사망 전날·당일 확진을 합하면 24.3%(27명)에 이른다. 사망자 4명 중 1명은 코로나19 치료를 만 하루도 받지 못한 것이다. 확진 판정부터 사망 시점까지의 평균 투병 기간은 6.6일로 일주일이 채 안 됐다.
연령대별로는 80대가 35.1%(39명)로 가장 많았고 70대가 33.3%(37명), 60대가 16.2%(18명)로 뒤를 이었다. 최연소 사망자는 몽골 국적의 35세 남성이었고 최고령 사망자는 98세 여성 2명이었다. 사망자 가운데 남성은 52.2%(58명), 여성 47.8%(53명)이었다.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은 대구(82명)와 경북(24명)이었다. 경기도(3명), 강원도와 부산(각 1명)에서도 사망자가 나왔다.
대구=방극렬 기자, 김유나 권중혁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