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프로배구 V-리그가 조기 종료됐다. 2005년 창설 이후 16시즌 만에 최초로 정규리그 일정도 미처 다 마치지 못한 채 배구장 문을 닫았다. 뜨거웠던 올 시즌 프로배구는 이로써 남자부 우리카드, 여자부 현대건설의 정규리그 1위로 마침표를 찍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23일 서울 마포구 사무국 회의실에서 프로배구 13개 구단 단장이 참여하는 긴급 이사회를 열고 리그 조기 종료를 선언했다. 조원태 KOVO 총재는 이사회가 끝난 뒤 “선수와 팬들을 비롯한 리그 구성원들의 보호, 그리고 국가적 위기 극복에 동참하고자 시즌을 종료하게 됐다”며 조기 종료 결정의 의미를 설명했다. 4대 프로스포츠(축구·야구·배구·농구) 중 조기 종료 결정은 20일 여자배구연맹(WKBL) 이후 두 번째다.
시즌이 종료됨에 따라 챔피언결정전이 열리지 못해 이번 시즌 ‘우승팀’은 없다. 다만 이사회는 5라운드 종료 시점 기준으로 정규리그 순위를 인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남자부는 우리카드, 대한항공, 현대캐피탈이, 여자부는 현대건설, GS칼텍스, 흥국생명이 1~3위를 차지하며 시즌을 마쳤다.
V-리그는 지난달 말부터 무관중 경기를 치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심화되자 2일 리그를 전격 중단했다. 23일 리그 재개가 유력한 상황이었지만 초·중·고등학교 개학 시점이 다음달 6일로 연기돼 지난 17일엔 KOVO 사무총장 주재 팀장급 회의에서 리그 재개 일주일 연기를 결정했다.
19일 격론 끝에도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했던 이사회는 21일 정세균 국무총리가 담화문에서 ‘집단 감염 위험이 높은 실내 체육시설 운영을 보름 동안 중단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고 표명하는 등 사회적 분위기가 우호적으로 흘러가지 않자 결국 이날 리그 중단 21일 만에 조기 종료를 선언했다.
이날 이사회에서도 13개 구단 단장들은 마지막까지 치열한 논의를 벌였다. 특히 정규리그 1위팀이 된 우리카드와 현대건설이 ‘우승팀’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하면서도 다음 시즌 손해를 보게 되는 게 문제였다. 남자부 1위팀은 신인선수 드래프트 확률을 1%밖에 부여받지 못하고,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도 3.57%의 확률만 선점할 수 있다. 여자부도 각각 2%와 8.33%로 우수한 선수를 뽑을 확률이 적어진다.
이에 각 구단 단장들은 5라운드만을 치른 가운데에서도 정규리그 상금을 정상적으로 1~3위 팀에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또 1~3위 팀의 동의로 남녀부 상금 총 4억 원을 구단이 KOVO에 기탁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성금으로 기부하고 생업을 잃은 전문위원, 심판, 기록원 등 배구 구성원들의 생활자금으로도 지원하기로 했다.
쟁점이었던 선수들의 기록은 6라운드 뛴 경기까지의 누적 기록을 모두 인정해주기로 했다. 자유계약(FA) 선수 연한 산정 기준도 본래 선수들의 뛴 경기가 6라운드 전 경기 수의 40%보다 많아야 인정이 됐지만 이를 각 팀별로 진행한 6라운드 경기 수의 40%로 변경해 선수들의 손해가 없도록 했다. 다만 최우수선수(MVP), 신인상, 베스트7 등 개인상 선정에서는 5라운드까지 기록을 기준점으로 삼도록 했다.
시즌이 조기 종료됨에 따라 KOVO는 중계권 계약을 체결한 KBSN과도 손실 부분에 대한 보전을 논의해야 한다. KOVO 관계자는 “양측이 손해보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합의할 수 있도록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리그 조기 종료에 대한 후속조치를 차질 없이 진행하고 앞으로 이런 천재지변과 같은 상황에 대한 세밀한 규정을 보완해 어떤 상황에도 모두가 수긍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