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6000억원대 피해를 일으킨 라임자산운용 사태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정체도 몰랐던 각종 ‘회장님’들이 고객 자금을 멋대로 주무른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를 감독해야 할 금융 당국은 속수무책이었고, 오히려 그간 규제 완화에만 골몰해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헤지펀드 시장이 온갖 경고음을 울리는 와중에도 라임이 업계 1위로 발돋움한 과정에 금융당국의 책임은 없었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라임 피해자들은 “금융감독원 출신 청와대 행정관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일련의 규제 완화와 부실 감독의 배경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라임은 2015년 12월 다른 5개 운용사와 함께 전문투자형 사모펀드 첫 등록 사례로 이름을 올렸다. 박근혜정부 시절 대대적으로 추진된 사모펀드 규제완화 방안에 따른 결과다. 금융위원회는 2015년 사모펀드 회사에 대해 인가제로 운용하던 규제를 등록제로 완화한다.
당시에도 규제 완화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2014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준 의원은 “한국 사모펀드 시장은 침체돼 있지 않고, 오히려 오버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당시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은 “사모펀드가 움직임이 자유롭기는 하지만 불법을 자행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규제는 완화하되 감독을 잘하면 된다던 금융 당국의 공언은 문재인정부에서 무색해졌다. 라임자산운용의 전체 펀드규모는 2015년 206억원에서 2019년 4조9942억원으로 훌쩍 뛰었다. 사모펀드 운용사의 숫자는 이 기간 6곳에서 51곳으로 늘었다. 그 동안 퇴출된 부실 운용사는 단 3곳에 불과했다.
라임이 주로 활용했던 메자닌 투자기법은 곳곳에서 경고음을 울렸지만 금감원의 감독망은 촘촘하지 못했다. 메자닌 투자는 주식과 채권 사이에 위치한 전환사채(CB) 투자를 뜻한다. 전환사채는 회사가 잘나갈 땐 주식으로 전환해서 수익을 얻지만 회사가 망하면 결국 원금도 돌려받기 어렵다. 라임은 코스닥시장 파티게임즈라는 회사의 CB에 400억여원을 투자했는데, 이 회사가 지난 2018년 3월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오른다. 그런데 라임은 이 CB를 제3자에게 액면가 그대로 넘겨 손실을 피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손해가 날 게 뻔한 CB를 넘길 수 있었던 과정에 대해 업계에서 의문이 많았다”며 “금감원이 당시 문제점을 발견했다면 사태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 시장의 부실이 곪아가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2018년 11월 사모펀드 시장에 대한 개인 전문투자자의 범위를 넓히는 규제 완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직접적인 규제 완화 방안은 아니지만 2018년 4월에는 코스닥벤처펀드를 출시해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이 코스닥시장 기업 CB 등에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넓혀줬다. 당시에도 개인투자자에겐 위험한 상품이라는 지적이 많았지만 벤처기업 활성화라는 구호에 묻혀버렸다.
결국 라임 사태는 단순 불완전판매의 문제라기보다는 산업 발전을 위해 투자자들의 피해를 제때 방어하지 못한 전형적인 금융정책의 실수라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검찰은 라임 사태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라임 이종필 전 부사장을 쫓고 있다. 라임의 자금을 유흥업소에서 사용한 의혹을 받는 김모(46)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및 라임의 펀드자금 2500억원을 투자받은 김모(47) 메트로폴리탄 회장의 검거에도 주력하고 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