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해외 체류 국민들의 전세기 투입 요청이 빗발치면서 정부가 고민에 빠졌다. 정부는 자력 귀국이 불가능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정부 전세기를 투입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국경 통제와 공항 폐쇄, 항공편 운항 중단 등 이동 제한 조치가 취해지면서 전세기 운항이 점차 불가피해지는 상황이다. 세금으로 전세기를 투입해 해외 체류 국민을 데려오는 데 대한 비판적 여론도 부담스럽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23일 비공식 브리핑에서 “정부가 전세기를 주선하는 것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가능하면 상업 항공편으로 귀국토록 하되, 그게 어려울 경우 정부가 국민 보호 역할을 마땅히 한다는 기본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교민 귀국을 위한 정부 전세기 2대는 다음 주쯤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 약 650명이 탑승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이탈리아 교민 전세기는 한인회 차원에서 교섭이 이뤄지고 있었으나 최종 단계에서 결렬됐다. 이에 따라 중국 우한과 일본 크루즈선, 이란에 이어 네 번째로 정부 전세기가 운항하게 됐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이탈리아도 초기에는 자력 이동수단이 있었지만 상황이 하루가 다르게 악화됐다”며 “자력 귀국에 일차적으로 힘을 기울이되, 자력 귀국이 잘 이뤄질지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민간 전세기 운항이) 되는 것 같다가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로서는 정부 전세기 투입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승객에게 항공료를 받기는 하지만 전세기 투입에 드는 비용의 대부분을 정부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본국에 납세의무를 지지 않는 내지 않는 재외국민에게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귀국시킬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도 나온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의료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되면서 전세기에 동승해 탑승객 건강을 살필 의료진을 물색하는 것도 어려워지는 실정이라고 한다.
현재 추진 중인 정부 전세기는 아직까지 이탈리아가 유일하다. 스페인에서도 전세기 투입이 논의되고 있지만 일단은 민간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스페인 한인회는 귀국을 원하는 교민은 이달 말까지 탑승 의사를 밝혀달라고 공지했다. 스페인에는 경유 항공편 등을 이용해 자력 귀국할 방법이 아직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페인 한인회는 “정부 전세기 운항은 귀국 수단이 없는 최후의 경우에만 가능하다”며 “귀국 희망자는 수요 조사와 별개로 항공편 찾기를 멈추지 말고 기회가 있으면 바로 귀국하는 게 좋다”고 당부했다.
페루 체류 국민의 귀국을 위한 전세기 역시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페루 체류 국민들은 오는 2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것으로 잠정 결정됐다. 전세기 요금은 1인당 377만7600원으로 산정됐다. 해발 3000m 쿠스코 고지대에 머무르는 우리 국민은 추가로 400달러(50만7400원)을 지불하고 리마까지 이동해야 한다. 최종 탑승자로 결정되면 의사를 철회할 수 없으며 만약 이탈자가 발생하면 현지 당국이 항공기 이륙 자체를 불허할 수도 있다고 주페루 한국대사관은 밝혔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