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 적용 될까…‘n번방’ 26만 회원 추적, 본격화

입력 2020-03-23 14:24
여성을 협박해 성착취 불법 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모씨가 구속된 이후 경찰이 ‘박사방’을 비롯한 이른바 ‘n번방’ 참여자 추적을 본격화하고 있다.

텔레그램 ‘n번방’을 통해 미성년자의 성 착취물을 유포한 혐의를 받는 조모씨가 1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박사’로 불린 조씨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음란물 제작·배포 등)로 지난 16일 경찰에 체포됐다. 최현규 기자

23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지방경찰청은 성착취 영상물을 보기 위해 ‘박사방’에 참여한 이용자들의 신상을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일부 여성단체는 텔레그램 성착취물 공유방 60여곳의 이용자가 총 26만명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이중 ‘박사방’ 회원은 최대 1만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경찰 관계자는 “‘박사방’ 회원들 역시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라 집단 성폭력의 공범이라는 여론을 잘 파악하고 있다”며 “법에 근거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 온라인 메신저인 텔레그램에서 운영된 성착취 영상 공유방의 시초는 ‘n번방’이며, ‘박사방’은 그 연장 선상에서 만들어졌다. ‘n번방’은 1~8번까지 번호를 매긴 방에 회원들을 분산 운영했으며, ‘박사방’은 20만원·70만원·150만원 등 입장료를 3단계로 두고 액수에 따라 성착취 영상물을 차등 배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개정 성폭력처벌법)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디지털 성범죄 근절과 강력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수사력을 총동원하면서도 텔레그램이라는 메신저 특성과 적용 법의 한계 등으로 인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텔레그램은 해외 메신저이기 때문에 협조 요청 등에 한계가 있어 수사에 애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관련 방이 수시로 없어졌다 생겨나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다양한 접근 방식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최종상 경찰청 사이버수사과장은 지난 19일 경찰청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이버 성범죄를 막기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위치가 베일에 가려진 텔레그램 본사를 추적해서 한국내 성착취물 유포 및 소지자들의 신상정보를 확보하고, 이미 유포된 성착취물의 삭제 등을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텔레그램 성 착취물 공유방 회원 수를 파악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텔레그램 전체 성착취물 공유방 이용자로 알려진 26만명은 중복 회원을 모두 포함한 인원으로, 이중 유료 회원은 일부일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박사방’ 회원으로 알려진 1만명은 유료회원이 아닌 ‘맛보기 방’ 회원으로 보인다”며 “1만명 중 유료 회원도 섞여 있겠지만 현재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유료 회원이 금액을 지불한 수단이 암호화폐라는 점도 수사를 곤란하게 한다.

결제가 신용카드나 휴대전화 등으로 이뤄졌다면 범죄 흔적을 쉽게 추적할 수 있지만, 암호화폐는 서비스하는 회사마다 방식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수사 단서를 잡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유료 회원을 처벌할 수 있느냐를 놓고도 법률 해석이 엇갈린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용자들은 불법 음란물 제작이 끝난 상태에서 영상을 보러 들어온 것으로 보이므로 영상물 제작의 공범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해당 영상을 내려받아 다른 사이트 등에 2차로 게재했다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돈을 내고 음란물을 봤다는 것만으로는 범죄의 구성요건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반면 한 변호사는 “법리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면 회원들을 조씨의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연합뉴스에 밝혔다. 현행법상 성인 성착취물을 촬영·배포하지 않고 소지만 한 경우는 처벌 근거가 없다. 미성년자의 성 착취물을 소지했을 때만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1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다만, ‘박사방’에 올라온 성 착취물을 유포했다면 피해자의 성인 여부와 관계없이 ‘비동의 유포’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4조 2항은 “촬영 당시에는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사후 그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반포(배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연합뉴스 측에 “난이도가 매우 높은 수사”라며 “적용 가능한 법 조항 등을 토대로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성훈 기자 tell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