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4주 안에 올림픽 연기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힌 이후 일본 정부의 움직임에도 변화가 생겼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처음으로 2020 도쿄올림픽 연기 가능성을 언급했다. 올림픽을 개최하는 두 주체가 모두 ‘연기’ 가능성을 언급함에 따라 연기될 구체적인 날짜도 관건이 됐다.
일본 복수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23일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도쿄 올림픽의 연기를 포함한 일정을 검토하겠다는 IOC의 방침에 대해 “온전하게 경기를 치르기 어렵다면 (선수들의 건강을) 최우선해 올림픽을 연기하기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계속해서 ‘완전한 형태’로 올림픽을 개최하는 걸 목표로 밝힌 바 있다.
아베 총리는 이어 “IOC가 최종 결정을 내릴 테지만 올림픽의 취소는 의제에 없다는 건 마찬가지고, 일본도 이런 의견을 공유한다”며 취소보단 연기에 방점을 찍었다.
앞서 IOC는 같은 날 긴급 집행위원회를 열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올림픽을 연기하는 게 하나의 선택사항”이라며 “연기 시나리오를 포함한 세부 논의를 시작해 4주 안에 매듭지을 것이고, 취소는 의제에 올리지 않을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바흐 위원장도 선수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람의 생명은 올림픽의 개최를 포함한 모든 것에 우선한다. 우리는 건강을 보호하고 바이러스 억제에 기여하는 걸 주된 원칙으로 삼았다”며 변화된 입장을 보였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이런 IOC의 기조에 발을 맞춘 것으로 해석된다.
올림픽 연기가 가시화되면서 IOC와 일본 정부는 구체적인 시기 조율에 머리를 싸맬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도쿄시는 2013년 81페이지 분량의 ‘개최 도시 계약’을 IOC, 일본올림픽위원회(JOC)와 체결했다. 이 계약 조항 중엔 ‘올림픽 참가자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경우’ 60일 이전 통지 절차를 거쳐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일정을 연기할 경우에도 올해 말까지는 올림픽이 열려야 한다. 만약 그 이후까지 연기된다면 개최 도시 계약을 다시 체결해야 한다.
하지만 올해 안에 열리는 것도 쉽지 않다. IOC는 최근 4년 동안 50억 달러 이상을 투자 받았는데, 그 중 ¾은 중계권으로부터 나왔다. 중계권사인 미 NBC는 그 중계권 액수의 절반 이상을 담당했다. IOC도 ‘돈줄’인 NBC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NBC로선 올해 안에 몇 달 늦춰 올림픽을 치르는 게 이상적인 스케줄이 아니다. 가을엔 미국프로풋볼(NFL)과 대학 풋볼 등 미국 내 인기 스포츠 중계 일정이 있어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현재 올림픽 기간 광고의 90%를 팔아 총 12억5000만 달러의 수익을 낸 NBC로선 여름 올림픽 기간의 공백을 메울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태다.
1년을 옮겨 치르는 것도 만만찮다. 내년 7월엔 일본 후쿠오카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8월엔 미국 오리건주 유진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수영과 육상은 하계올림픽 메달이 가장 많이 걸린 종목이라 이 일정을 피해서 올림픽 일정을 짜야 한다. 2년을 연기할 경우에도 동계올림픽과 같은 해에 하계올림픽까지 치러야 해 IOC로선 부담이 가중된다.
한편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캐나다올림픽위원회(COC)가 같은날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기 전에는 도쿄올림픽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데 이어 호주올림픽위원회도 자국 선수들에게 2021년 여름에 열리는 도쿄올림픽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히는 등 각 국도 ‘연기’에 힘을 싣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여파로 취소된 1940 도쿄올림픽과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수많은 나라가 보이콧해 반쪽짜리로 열린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 이어 ‘40년 주기’로 올림픽은 수난을 겪고 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