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21일(현지시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2차 전지 영업비밀침해 소송과 관련해 LG화학의 손을 들어주는 내용의 130여쪽 분량 조기패소(Default Judgement) 판결문을 공개한 가운데 양측의 신경전이 날카롭다. LG 관계자는 22일 “SK이노베이션이 수년 전부터 영업비밀을 빼가고, 이 문서를 삭제하거나 숨기는 행위를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난감한 기색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지난달 중순 이미 조기패소한 사실이 다 알려졌는데 (LG화학 측이) 판결문 내용을 왜 상세히 다시 알리는지 모르겠다”며 “우리 입장은 지난번과 똑같이 ‘원만한 합의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사의 영업비밀침해 소송과 관련 앞으로 남은 절차에 관심이 쏠린다.
ITC위원회는 지난달 중순 SK이노베이션 측의 조기 패소 판결을 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3월 3일 ‘예비결정에 대한 검토(Petition for Review of the Initial Determination)’를 신청했다. 이에 따라 ITC위원회는 오는 4월 17일까지 검토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ITC위원회가 SK이노베이션의 검토 신청을 받아들여 검토 절차를 진행할 경우 오는 10월 5일 까지 최종결정을 내린다.
관세법에 따른 제재규정 중 구제조치란 해당 기업 제품에 대한 수입금지 결정을 의미한다. 즉 전기차 배터리를 비롯해 SK이노베이션이 LG화학으로부터 불법적으로 영업비밀을 침해해 생산했다고 인정되는 제품의 미국 내 판매가 금지된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주에 2022년 양산을 목표로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공탁금은 ITC위원회의 최종 결정 이후 미국 대통령의 심의기간(60일)이 있는데, 이 기간에 수입금지 유예를 위해 검토 신청인이 내야 하는 돈이다. ITC위원회가 행정판사의 예비결정을 받아들여 검토요청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관세법 위반 사실이 그대로 인정되며, 위원회는 공공의 이익을 고려한 구제조치, 공탁금 등에 대한 최종결정만 10월 5일까지 내리면 된다.
ITC위원회가 당사자의 검토 요청을 거부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SK이노베이션은 ITC위원회가 최종결정을 내리는 데드라인 10월 5일 전에 LG화학과 합의하는 것이 최선이다. ITC통계(2010~2018)에 따르면 예비결정에 대해 소송 당사자가 검토를 신청한 건은 모두 ITC위원회가 검토했다.
하지만 ITC위원회가 검토를 진행한 모든 건에서 행정판사의 예비결정이 ITC위원회의 최종결정으로 그대로 유지됐다. 최종결정에서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체 피해 규모를 산정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돼 합의에는 난항이 예상된다.
양사가 막대한 비용의 소송을 하는 이유는 배터리 시장이 수백조원의 거대 시장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규모는 지난해 530억달러에서 2025년 1670억달러(200조원)로 커질 전망이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2015년 1500억달러)을 넘어설 수도 있다는 기대다.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1위는 테슬라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파나소닉이 1위이고, LG화학은 2위다.
LG화학 관계자는 “배터리 시장 규모가 앞으로 메모리 반도체를 능가할 것이라고 한다. 이 소송은 수백조원의 시장이 걸린 소송”이라며 “이번 판결로 해외 경쟁사들 특히 중국 기업이 함부로 인력과 영업비밀을 빼가는데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