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수가 30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이탈리아 상황을 본보기 삼으며 “더 빠르고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중국을 뛰어넘은 이탈리아가 곧 자신들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유럽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21일(현지시간) 기준 15만명에 미치고 있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이탈리아가 5만3578명으로 가장 많다.
유럽 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 코로나19 위기에 빠진 이탈리아는 국가비상사태 선언, 이동제한령발동 등도 가장 먼저 실시했다. 하지만 ‘한 발 늦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뒤늦은 대처로 슈퍼 전파자가 발생했고, 의료장비 및 시설 부족 문제가 맞물리며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가장 크게 지적된 문제는 중앙정부와 지역 당국의 안일한 상황 인식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그 예로 베페 살라 밀라노시장을 들었다. NYT는 “살라 시장은 ‘밀라노는 멈추지 않는다’면서 폐쇄했던 밀라노대성당을 다시 열고, 사람들은 뛰쳐나갔다”면서 “같은 시기에 롬바르디아주 보건당국자는 감염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아틸리아 폰타나 롬바르디아주지사는 “총리와 다른 지역 주지사들에게 확진자 수가 늘어 북부 지역의 병원 시스템이 무너질 위험이 있고, 더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했지만 번번이 무시당했다”면서 “정부는 상황이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지역 경제에 지장을 줘선 안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같은 상황은 미국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정보당국이 올초부터 코로나19의 미국 내 대유행을 경고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듣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들에게 ‘증상이 없다면 검사받으려고 하지 말라’고만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는 미국의 주지사들에게 더 강력한 대책을 쓰지 않으면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경고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럼에도 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바이러스와 어떻게 싸워야하는지에 대해 확신이 없고, 우물쭈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독일 슈피겔은 이탈리아를 ‘미래 실험실’이라고 표현했다. 슈피겔은 “독일의 정치인들이 ‘소극적인 롤모델’(이탈리아)을 경계하고 있다”면서 “독일에 곧 닥칠 수 있는 상황이 이탈리아 남부의 티롤이나 시칠리아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NYT는 “사람들을 격리시키고 이동을 제한하는 움직임은 강압적이고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이탈리아가 경험으로 보여주고 있다”면서 “검사를 통해 잠재적인 감염자를 걸러내지 않는다면 압도적인 감염자 수가 의료 체계에 구멍을 내고, 국가적인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미국과 다른 국가들은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