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찍게 한 ‘n번방 박사’ 법망 피하나… 대법 “셀프촬영도 처벌”

입력 2020-03-22 16:08 수정 2020-03-22 16:20
'텔레그램 N번방’을 통해 미성년자의 성 착취물을 유포한 혐의를 받는 조모씨가 지난 1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박사’로 불린 조씨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음란물 제작·배포 등)로 지난 16일 경찰에 체포됐다. 최현규 기자

미성년자 등을 협박·강요해 ‘셀프 촬영’한 음란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는 ‘텔레그램 n번방’의 운영자 ‘박사’ 조모씨를 엄벌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쟁점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11조 1항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제작죄’의 적용 가능성이다. 이 조항이 적용될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진다. 이 사건 관련 형벌조항 중 처벌 수위가 가장 높다.

논란이 생기는 대목은 아동·청소년을 협박·강요해 스스로 신체 사진·영상을 촬영하게 한 것을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제작으로 볼 수 있느냐다. 가해자가 직접 사진·영상을 촬영한 게 아니므로 음란물 제작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반대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는 그러나 아동·청소년 스스로 음란물을 촬영하게 한 경우도 ‘제작’으로 판단한다. 더 나아가 이 과정에서 아동·청소년의 동의가 있었더라도 처벌 대상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조씨가 법망을 피하기 위해 셀프 촬영하게 한 점이 입증될 경우 가중 처벌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법원은 2018년 9월 여고생에게 “68만원을 줄 테니 교복 착용 사진과 나체 영상을 보내라”며 셀프 음란영상을 찍게 한 박모씨에게 청소년이용음란물제작죄를 적용해 징역 2년6개월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직접 촬영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도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만드는 것을 기획하고 타인에게 촬영행위를 하게 하거나 만드는 과정에서 구체적 지시를 했다면 ‘제작’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박씨는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조항”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인터넷 발달로 무분별하게 유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제작’을 엄격히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아동·청소년의 동의가 있더라도 아청법 11조 1항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헌재도 “아동·청소년의 촬영 동의가 있다거나 연령이 높아 성인과 큰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같은 취지로 판단하고 있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재판이 시작되면 가해자가 직접 올린 게 아니라고 항변할 가능성이 있는데 괘씸죄가 적용될 수 있다”며 “미성년자 스스로 촬영하게 한 점은 오히려 양형 가중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윤택 사건’ 피해자를 소송대리했던 김보람 변호사는 “가해자가 음란물 제작 과정 전반을 지배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협박·강요를 통해 어쩔 수 없이 음란물을 찍게 한 만큼 형법상 타인을 범행도구로 이용한 간접정범도 성립할 수 있다”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