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최악의 한 달’을 겪은 전 세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이 3경2000조원 가까이 증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미국 증시가 30% 넘게 급감한 데다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증시가 ‘폭락 도미노’ 현상을 연출하면서다.
22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19일(현지시간) 기준 86개국 증시의 시가총액은 총 62조2572억 달러(약 7경7416조원)로 집계됐다. 지난달 19일(87조8708억 달러)보다 29.2%(25조6136억 달러, 약 3경1900조원) 줄어든 규모다. 2018년 한국 국내총생산(GDP) 추정치(약 1조6999억 달러)의 15배 넘는 돈이 사라진 것이다. 이탈리아(-40.1%)를 비롯해 영국(-40.0%), 프랑스(-37.1%), 스페인(-35.8%) 등 유럽 국가들과 미국(-30.8%), 일본(-22.7%) 등 선진국 증시 시가총액이 모두 급감세를 보였다.
국내 증시 시가총액도 같은 기간 37.9%(5331억 달러) 줄어들었다. 86개국 가운데 18번째로 큰 감소율이다. 특히 국내 대장주인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최근 두 달 간 372조5144억원에서 271조281억원으로 101조원 넘게 쪼그라들었다.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도 22조원 줄었다. 두 종목은 지난 두 달 새 외국인 투자자가 가장 많이 순매도한 종목 1, 2위다.
증시 폭락이 장기화되며 개인 투자자가 빚을 내 주식을 사들인 금액인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크게 줄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지난 13일 이후 10조원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 19일엔 7조8280억원까지 주저앉았다.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주가 하락이 예상외로 길어지고 낙폭도 커지면서 ‘개미(개인 투자자)’들의 추가 매수 여력이 떨어진 탓이다.
주식 반대매매 규모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로 치솟았다. 투자자가 빚을 내 사들인(신용거래융자) 주식의 상승 동력이 떨어지면 증권사는 돈을 받기 위해 해당 주식을 반대매매 물량으로 시장에 내놓게 된다. 금투협에 따르면 이달 들어 하루 평균 반대매매 금액은 162억3300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19일엔 260억원에 달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2008년 10월(184억 4600만원) 이후 11년5개월 만에 가장 큰 규모다. 주가 하락으로 반대매매를 겪은 개미들이 많다는 뜻이다. 주가 하락세가 계속될 경우 갖고 있는 주식을 다 팔아도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 계좌’(담보유지비율이 100% 미만인 계좌)가 속출할 거란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 13일 증권사에 대한 신용융자 담보비율(통상 140%) 유지의무를 면제하며 “기계적 반대매매를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실효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고경범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담보유지비율에 대한 일관된 기준이 정해지지 않아 금융투자회사의 반대매매는 기존 수준에서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민아 양민철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