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역할 분담이 뚜렷해지고 있다.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이 국방과 경제 등 내치 분야에 집중한다면 김 제1부부장은 대남, 대미 메시지 발신 창구를 맡으며 외교 분야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김 제1부부장이 외교 분야에서 김 위원장의 대변인 역할을 맡으며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매체는 김 위원장이 지난 21일 전술유도무기 시범사격을 참관했다고 22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어떤 적이든 우리 국가를 반대하는 군사적 행동을 기도하면 영토 밖에서 소멸할 수 있는 타격력을 더욱 튼튼히 다져놔야 한다”며 “이것이 우리 당이 내세우는 국방건설 목표이고 가장 완벽한 국가방위 전략이며 진짜 믿을 수 있는 전쟁 억제력”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 제1부부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낸 데 사의를 표명하는 유화 메시지를 내놨다. 김 제1부부장은 자기 명의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있으며 최근 의사소통을 자주 못해 자신의 생각을 알리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데 대해 언급하며 앞으로 김 위원장과 긴밀히 연계해 나가기 바란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김 제1부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뜻도 밝혔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친서가 김 위원장과의 특별하고도 굳건한 개인적 친분관계를 잘 보여주는 실례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두 수뇌분들 사이의 개인적 관계는 두 나라 사이의 대립 관계처럼 그리 멀지 않으며 매우 훌륭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김 제1부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가 곧바로 북·미 관계 진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 제1부부장은 “개인적 친분관계가 두 나라의 관계 발전 구도를 얼마나 바꾸고 견인할지는 미지수이며 속단하거나 낙관하는 것도 그리 좋지 못한 일”이라며 “친서가 아니라 두 나라 사이에 역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평형이 유지되고 공정성이 보장돼야 두 나라 관계와 그를 위한 대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제1부부장이 자기 명의로 담화문을 낸 것은 두 번째다. 지난 3일 김 제1부부장은 청와대가 북한군 방사포 사격훈련에 유감을 표명한 데 대해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고 맹비난한 바 있다. 대남 비난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하는 대미 메시지도 김 제1부부장 명의로 나오면서 그가 대남 및 대미 정책에서 상당한 역할을 맡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최근까지 대남 메시지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미 메시지는 외무성에서 주로 발표해왔다. 김 위원장은 북·미 긴장이 높았던 2017년 직접 성명을 낸 적은 있었으나 이는 이례적인 경우였다. 일반적인 대남, 대미 입장은 기존대로 내각 부처인 조평통과 외무성이 발표하되, 김 위원장의 속내를 담은 특별한 메시지는 김 제1부부장에게 맡기는 식으로 업무 분장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김 제1부부장 명의의 두 번째 담화는 김 위원장의 공식 대변인으로서 위상 변화를 뚜렷이 과시하고 있다”며 “김 제1부부장은 김 위원장이 직접 말하기 껄끄러운 단호한 원칙적 입장을 표명하는 역할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